[뉴스임팩트=한성규 라오스통신원]베트남 통일 50주년,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베트남을 공격하면 끝까지 싸운다.
지난달 30일, 베트남 호치민 시는 새벽부터 분주했다. 베트남 공군 헬기 편대가 도시 상공을 가로지르며 요란한 굉음을 남기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예포가 하늘을 갈랐고, 이어 펼쳐진 군사 퍼레이드에는 1만3000명에 달하는 민·관·군 인원이 동원됐다. 베트남에서 통일절은 단지 국가의 기념일을 넘어서, 이 날은 ‘기억의 축제’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며 전쟁이 끝난 바로 그날로부터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이었다.
전쟁의 종지부와 새로운 출발
통일절은 베트남어로 ‘Ngày Giải Phóng Miền Nam’(남부해방의 날), 혹은 ‘Ngày Thống Nhất Đất Nước’(국가통일의 날)이라 불린다.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 인민군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현 호치민시)을 점령함으로써 20년 넘게 이어졌던 베트남 전쟁은 막을 내렸다. 대통령궁 정문을 돌파한 탱크 한 대는 이후 역사책마다 실리게 되었고, 사이공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분단의 강은 합쳐졌고, 하나의 베트남이 시작되었다.
평화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54년 제네바 협정 이후 북위 17도를 경계로 남북으로 나뉘었던 베트남은 냉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미국과 소련이 각각 지원하는 이념 대결 속에서, 베트남 땅은 피로 물들었다. 미군은 1965년부터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파병했고, 한때 50만 명이 넘는 병력이 주둔하기도 했다.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닌, 세계사적 상처로 기록되었다. 수백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고, 에이전트 오렌지 같은 화학전의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통일 50주년, 기억과 화해의 장
전쟁의 무대였던 베트남이 지금, 통일 50주년을 맞아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관광객은 이번 기념식에서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탱크를 형상화한 드론 1만500기가 사이공강 밤하늘을 수놓았고, 연꽃 위 호치민 주석의 형상이 떠올랐다. 그 모든 장면은 오히려 전쟁의 파괴보다 평화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건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접 4개국과 함께한 연합 군사 퍼레이드였다. 미국이 중국을 적으로 돌린 현 시점에서 의미가 큰 퍼레이드였다. 인도차이나 전쟁의 상흔을 공유했던 국가들이 이제는 문화와 외교로 연대하는 장면은 시대의 전환을 실감케 했다. 행사 전날부터 시민들은 밤새 현장을 지켰고, 젊은이들은 ‘국가 콘서트’, ‘국가 아이돌’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념과 계층을 넘어 모두가 즐기는 통일절은 이제 단순한 정치기념일이 아니라 세대 통합의 상징이 되었다.
도이머이 세대의 국가 재발견
특히 흥미로웠던 건 1986년 도이머이(Đổi Mới, 개혁개방) 이후 출생한 청년들의 반응이었다. 이들은 전쟁의 고통보다 평화의 가치를 먼저 배운 세대다. 그들에게 통일절은 무거운 역사라기보다 ‘국가의 생일’ 같은 축제다. 반세기 전 총성이 울렸던 그 자리에서, 이제는 3D 맵핑쇼가 펼쳐지고, 자전거 대회가 열리며, 불꽃놀이가 터진다.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순간, 필자는 비로소 베트남이라는 나라의 회복력을 실감했다.
과거를 기억하되 미래를 지향하는 나라
이번 통일절 연휴는 주말을 끼고 임시공휴일까지 지정되어 닷새 동안 이어졌다. 전국의 주요 관광지와 휴양지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고, 열차와 항공편은 연휴 시작 전부터 매진됐다. 호치민시 중심가인 동커이길은 새벽부터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연휴는 단지 쉬는 날이 아닌, 역사와 미래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50년 전, 총성이 멈춘 날. 그리고 지금, 음악과 불빛이 넘실대는 오늘. 베트남은 전쟁을 기억하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았다. 상처를 회피하지도 않지만, 거기에 머물지도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민족 ‘통일’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통일절이 되면 아이들, 아주머니들 할 것없이 모두가 국기가 박힌 옷을 입고 국기로 얼굴까지 장식을 한다. 베트남의 모든 전쟁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외세에 맞서 싸웠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 묻자 한 젊은 여성이 한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사랑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라도 우리나라를 공격하면 끝까지 싸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