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직무대행(사진 왼쪽)과 박종국 뉴스임팩트 편집국장이 대화하고 있다.@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세계정세가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다. 이스라엘이 핵무기 개발을 막겠다며 이란군 지휘부를 몰살하고, 이란은 미사일을 날려 이스라엘에 보복하고, 미국은 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해 이란 핵 시설을 파괴했다. 극적인 휴전이 성사되긴 했지만 전쟁이 다시 터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중동만이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도·파키스탄, 중국·대만 역시 언제든 불이 붙을 수 있는 화약고다. 북한의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안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뉴스임팩트가 핵과 북한 연구로 유명한 전문가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직무대행이다.

정성장 부소장은 1963년생으로 경희대 정치외교학과(학사), 프랑스 파리 낭테르대 정치학과(석박사)를 나왔다. 민간 학술 연구단체인 한국핵안보전략포럼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 직무대행.@뉴스임팩트

ㅡ유학지로 프랑스를 택한 이유가 있나.

"유학을 결정할 때 한국은 군사정권 시절이어서 사상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심했다. 반면 프랑스에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고르게 존재한다. 프랑스에 가서 상반되는 이념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ㅡ프랑스 하면 생각나는 정치인이 샤를 드골 대통령이다. 드골을 어떻게 평가하나.

"위대한 리더다. 드골은 1, 2차 세계대전의 쓰라린 경험을 프랑스가 반복해선 안 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미국이 반대하는데도 프랑스 안보와 국익을 위해 핵 개발을 밀어붙여 성공시켰다. 현재 유럽이 '미국 없는 유럽 안보'를 고민하는 것을 보면 드골은 정말 선견지명이 있는 탁월한 위인이다."

핵무기 일러스트.@출처=연합뉴스

ㅡ한국은 핵 개발을 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 눈치를 심하게 보잖나.

"한국의 글로벌 위상이 적어도 이탈리아, 스페인 정도는 된다. 약소국 콤플렉스를 깨야 한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중국을 세계 중심으로 간주했듯이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을 세계 중심으로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인 관점이 아닌 한국인 관점에서 안보 현안을 풀어야 한다.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 어느 나라든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순 있어도 운명을 함께 해주진 못한다'는 드골의 명언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ㅡ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주한미군에 우리 안보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잖나.

"과거처럼 한국이 미국에게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긴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주한미군 용도가 대북 견제용이 아닌 대중(對中) 견제용으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연방정부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국방비를 줄이겠다며 한국에 주한미군 분담금을 올리라고 요구한다. 왜 미국이 국민 세금 써가며 한국을 지켜줘야 하냐는 얘기다.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는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제 한국 안보는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ㅡ한국이 미국과 협상할 수 있는 카드가 있을까.

"미국의 중국 견제와 해군력 현대화에 가장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국가가 한국이다. 미국 조선업이 몰락해 미중 간 해군력 전이가 심각하다. 따라서 우리가 선박 건조 능력을 미국에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핵추진잠수함 핵심 기술과 핵연료 등을 공급받는 거래 등이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은 이미 핵잠수함 선체까지 만들고 있다. 5년 내 북한은 핵잠수함을 건조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북한에 기술을 이전해 주고 있다. 우리가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나. 중국·대만 전쟁 발발 시 한국이 군수물자, 포탄, 함정 유지·보수, 부상병 치료 서비스를 미국에 공급하면서 전폭적으로 후방지원할 테니 핵잠수함 개발에 협조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한국이 일본 수준의 핵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 기념사진.@출처=연합뉴스

ㅡ한국이 일본과 공조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듯한데.

"한일이 전략적으로 손잡을 수 있어야 한다. 과거는 과거대로 두고 현실을 지정학적 시각에서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행동하자는 거다. 말처럼 쉽진 않다. 국민 정서를 무시할 수 없잖나. 그래서 미국까지 끌여들여 한미일 공동으로 핵잠수함을 만드는 것부터 추진할 필요가 있다."

"재래식 전력은 한국이 일본보다 낫다. 산업 경쟁력도 일본이 예전만 못하다. 우리가 일본과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단 의미다. 이젠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을 넘어서서 일본과 전략적, 실용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ㅡ한국 핵 개발의 가장 큰 제약 요인은.

"국가 지도자의 자강 의지 부족이다. 자강하겠다는 결기가 없으니 실패한 미국의 핵 비확산 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 비핵은 선, 핵은 악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데 비핵 무기로 어떻게 막나.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비핵 환상에 빠져 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에 비핵화는 불가능하다. 중국과 북한 모두 핵무기를 급속도로 늘리고 있다. 그런 판에 미국이 한국을 보호해 줄 거란 안일한 사고로는 북한을 막을 수 없다. 북핵이 한국엔 실존적 위협이지만 미국한텐 수많은 국제 이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한국이 핵 개발을 하면 경제가 파탄 난다고? 미국의 대중 견제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국가가 한국이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도 지키지 않는 핵 비확산 체제 유지를 위해 한국 경제를 망칠 순 없다. 더불어 6·25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핵 자강이 필수다."

김주애(사진 왼쪽)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출처=연합뉴스

ㅡ북한 얘길 좀 해보자.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참 답답하다.

"보수정권은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보정권은 선의로 대하면 북한이 호응할 거로 믿었다. 둘 다 착각했고 실패했다. 북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동시에 한국이 아무리 평화 공세를 펴도 북한은 핵을 절대 사수할 거다. 이를 인정하고 핵엔 핵으로 맞서겠다는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한다."

ㅡ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반발하는 엘리트가 나올 수 없을까.

"단기적으론 불가능하다. 북한은 사실상 군주제 국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백두혈통은 왕족이다. 백두혈통을 보좌하는 항일유격대 2~3세 그룹은 귀족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평민이다. 엘리트들은 백두혈통과 이해관계를 같이 한다. 열두살 난 김주애에게 엘리트들이 왜 그렇게 충성하겠나. 김정은의 장녀인 김주애를 왕세녀로 여기는 거다."

ㅡ북한 엘리트 중에선 누가 잘 나가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들이 핵심이다. 그들이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핵심 분야를 관장한다. 비서들 보고를 받고 김정은이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다."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출처=연합뉴스

ㅡ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2013년 사형당함)이 2인자는 맞았나.

"장성택은 다소 과대평가된 실세였다. 아내인 김경희 전 조선노동당 중앙위 비서의 파워가 더 셌다. 김일성 전 국가주석 딸이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여동생인 김경희는 왕족이지만 장성택은 항일유격대 2세 그룹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도 왕족이어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는 공식서열과 무관하다. 2018년 김여정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북한 의전서열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김여정에게 먼저 자리를 권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ㅡ김정은이 의외로 정치 감각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김정은은 농구 감독 같은 리더십을 발휘한다. 부하들에게 명확히 일을 맡기고 확실히 책임지게 한다. 조선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땐 사흘에서 닷새 동안 간부들을 모아 놓고 분야별로 치열하게 토론을 시킨다. 자연히 계획이 치밀해진다."

"김정은이 군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포함해 군사 분야에서 빠른 발전을 이뤄내는 건 김정은이 거의 매일 새벽까지 해외 군사 웹사이트를 서핑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김정은을 만만하게 보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밀리터리 마니아인 그의 셈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핵 자강으로 남북 핵 균형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