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기 카이스트 방산수출전문가과정 책임교수(사진 왼쪽)와 박종국 뉴스임팩트 편집국장이 대화하고 있다.@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과거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K방산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빠른 성장세를 기록하더니 이젠 국가적 기대를 받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방위산업은 새 성장 동력이자 국방력의 든든한 근간"이라며 "모든 부처가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 투자, 해외 판로 확대에 노력하라"고 주문했다. 방산 4대 강국 달성을 이끌 방산 육성 컨트롤타워 신설, 방산수출진흥전략회의 정례화도 지시했다.
다만 K방산의 미래가 장밋빛만은 아니다. 대기업 중심으로 수출 실적이 집중되는 반면 혁신적 스타트업·중소기업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방산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알려진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eciprocal Defense Procurement MOU·RDP MOU)은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에 K방산 발전을 도모할 해법을 모색하고자 뉴스임팩트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방 조달 전문가인 김만기 카이스트 방산수출전문가과정(Defense Export Development Program) 책임교수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김만기 교수는 오랜 기간 미 국방부 사업과 글로벌 시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미국조달협회 고문, 한국방위산업학회 국제위원장, 법무법인 율촌 고문, 한국 국방부의 RDP MOU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김만기 카이스트 방산수출전문가과정 책임교수.@뉴스임팩트
ㅡ국방 조달 분야에 몸담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국방 조달, 그중에서도 미국 국방 조달은 단순한 행정 절차를 넘어서는 전략적 영역입니다. 국가 안보를 뒷받침하는 동시에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막중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국방 조달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학문적 연구와 실질적인 현장 실무 교육, 정책 제언을 해왔습니다. 특히 미국연방조달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FAR), 미국국방조달규정(Defense 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Supplement·DFARS),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 조달 규정을 포함한 주요 국제 조달 제도를 한국 실정에 맞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K방산 기업들의 역량 제고를 위한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 FAR은 미 연방정부 기관의 물품, 서비스, 건설 조달과 연관된 법률적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연방정부와 계약하려는 기업은 FAR을 준수해야 한다. DFARS는 FAR의 추가 사항이다. 안보, 군사 기술 보호, 방산 기반 유지 차원에서 FAR보다 규제가 엄격하다. 미 국방부 사업을 따려면 FAR뿐 아니라 DFARS까지 지켜야 한다.
ㅡ미국에서 방산업체 대표이사까지 올라가는 동안 고충이 많으셨을 듯합니다.
"솔직히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군 복무 시절 통역장교로 일한 경험이 미국에서 기업인으로 살아남는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미국 방산 비즈니스는 기본적으로 현지 주류 사회가 주도합니다. 환경이 낯선 판에 진입 장벽까지 높은 셈입니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는 실력을 기준으로 투명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꾸준히 실무를 익히고 성실히 성과를 쌓아가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ㅡ별 존재감 없던 K방산이 괄목상대한 모습을 보면 감회가 남다르실 텐데요.
"참으로 뜻깊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요즘 한국에서 방산 수출 업적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분위기엔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정부, 정치권, 언론, 기업이 K방산의 성공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지만 방산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민감한 사업입니다. 수출 정보가 과도하게 공개되면 국가 이익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독일·프랑스 같은 경쟁국의 견제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 방산은 조용한 결실을 추구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지난해 4월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제24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가 개최됐다. 사진은 KIDD 회의에 참석한 조창래 한국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사진 왼쪽)과 일라이 래트너 미 국방부 인태안보차관보가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출처=연합뉴스
ㅡK방산이 지속해서 크려면 RDP MOU를 맺어야 한다는 지적이 몇 해째 나오는데 여태 체결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원인이 뭘까요.
"우선 RDP MOU의 필요성부터 명확히 합시다. 이 협정은 한미 양국의 방산 연구·개발 협력과 안보 공조를 공고히 하면서 K방산 기업의 대미 수출 능력까지 높일 수 있는 전략적 도구입니다. 미국 방산 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RDP MOU 체결이 필수입니다. 이미 일본, 호주, 영국 등 28개국이 해당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국가들은 대미 방산 수출 시 미국산 우선 구매법(Buy American Act) 예외국 지위를 인정받아 50% 가격 할증을 받지 않습니다. 그만큼 RDP MOU 미체결국은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RDP MOU 체결이 지연되는 데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인 미국산 우선 구매법과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입니다. 그 규정들이 외국 방산업체의 미국 시장 진입을 엄격하게 막으면서 협상에 지장을 주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는 우려입니다. RDP MOU를 맺을 시 미국산 방산 제품 유입이 확대돼 한국 중소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중소기업 보호 방안이 충분히 마련된다면 이런 염려는 일부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ㅡRDP MOU가 무역 장벽을 없애는 FTA와 비슷하기에 한국 중소기업의 앞날이 어둡다고 보는 견해가 나올 수 있잖습니까.
"RDP MOU가 방산 FTA로 불리면서 중소기업이 흔들릴까 봐 근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RDP MOU는 일반적인 FTA와 다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방산 시장 상호 개방을 통한 안보 강화가 RDP MOU의 본질입니다. 동맹국 간 방산 물자 이동을 원활히 해 공동 안보 역량을 높이는 게 최우선 목표란 얘깁니다."
"일각에선 법령 개정을 걱정합니다만 사실 관계가 맞지 않습니다. RDP MOU가 체결국 국내법을 능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RDP MOU를 미국과 맺은 28개국 전부 국내법 개정 없이 협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절충교역이 불가능해진다는 주장 역시 오해입니다. RDP MOU는 절충교역을 금지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RDP MOU 체결국 중 23개국이 여전히 절충교역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절충교역은 외국에서 군사 장비, 물자, 용역을 획득할 때 외국 계약자에게 기술 이전과 부품 역수출을 비롯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조건부 교역이다.
ㅡ그래도 RDP MOU를 맺으면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미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을 집어삼키지 않을까요.
"그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한국의 국산화 정책과 기술 이전 요구를 비롯한 정책적 장치가 외국 기업 진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한국 방산 시장은 오랜 기간 쌓인 복잡한 공급망과 협력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미국 기업이라 한들 시장 공략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국 기업이 한국 업체와 손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 기업 단독 진출 혹은 대규모 시장 잠식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K방산 위상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첨단 기술 무기 체계에선 미국 회사가 우월하지만 재래식 무기 분야는 한국 기업이 뛰어난 가성비와 빠른 납기로 세계 시장에서 믿음을 얻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폴란드 관련 대규모 수출입니다. 게다가 이미 한국군이 미국산 첨단 무기를 다수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 기업이 재래식 무기나 일반 군수품 부문까지 한국 업체를 압도하긴 힘들어 보입니다."
ㅡRDP MOU를 안보 전략으로 봐야 한다고 언급하셨는데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거듭 강조하지만 RDP MOU는 단순한 무역 협정이 아닙니다. 한미 양국 간 안보 협력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협정의 핵심은 군사 장비 표준화(standardization), 합리화(rationalization),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확보입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가 RDP MOU 체결국이었다면 155㎜ 포탄 공급 부족 같은 문제도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한반도 역시 언제든지 안보 위기가 닥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RDP MOU를 조속히 맺어 비상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ㅡ세계 주요 방산업체 가운데 높은 점수를 주는 기업은 어디입니까.
"글로벌 방산 시장을 주름잡는 기업 중에 가장 주목하는 회사는 미국 노스롭그루먼입니다. 이 기업은 정찰·감시·무인기뿐 아니라 사이버 방어와 우주까지 비즈니스를 확장하면서 훌륭한 기술력과 유연한 대응 역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방형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다양한 중소기업과 상부상조하는 생태계를 조성한 것도 인상적입니다. 미 국방부와의 파트너십 역시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신기술 개발과 미래 지향적 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모범적 모델로 호평받고 있습니다. K방산 기업들이 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생각합니다."
ㅡ한국 중소기업 생태계 구축에 관해 제언을 해주신다면.
"한국 국방 조달 시스템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미국은 법적으로 국방 조달 물량의 최소 23%를 중소기업에 배정하고 있습니다. 정보 공개는 물론 제안서 작성, 계약 체결 후 평가까지 다양한 지원을 제공합니다. 한국도 정책적 뒷받침을 통해 중소기업이 충분히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K방산 대기업들 또한 미국 사례를 벤치마킹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파트너십을 어떻게 구축하고, 어떤 방식으로 컨소시엄을 운영해야 할지 방향을 설정하면서 세밀한 실행안까지 세워 나가야 합니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