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기 카이스트 방산수출과정 책임교수.@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 김만기 카이스트 방산수출과정 책임교수는 오랜 기간 미 국방부 조달업체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 미국조달협회 고문, 한국방위산업학회 국제위원장, 법무법인 율촌 고문, 한국 국방부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 MOU)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ㅡ미국 팔란티어나 안두릴처럼 작지만 시장에서 주목받는 방산 기업이 K방산에 없어 아쉽습니다. 한국형 팔란티어, 안두릴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팔란티어는 2003년 비즈니스를 시작한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회사다. 시가총액이 세계 최고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을 능가한다. 안두릴은 2017년 설립된 방산 스타트업이다. 비상장사지만 기업 가치가 305억달러(42조2608억원)에 달한다.
"팔란티어, 안두릴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기업이 아닙니다. 이들은 미 국방부가 전략적으로 구축한 방산 벤처 생태계 내에서 단계적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미 국방부가 발표한 국가 방위산업 전략(National Defense Industrial Strategy·NDIS)을 보면 두 회사가 어떻게 지금 위치에 올랐는지 알 수 있습니다."
"NDIS는 단순한 무기 도입을 넘어 공급망 강화, 동맹국 협력, 핵심 기술 확보, 정비·유지 인프라 현대화, 빠른 신기술 전력화, 지식재산권 보호까지 포괄합니다. 특히 인공지능(AI), 디지털, 자동화 분야에서 민간·군수 융합(Dual Use·듀얼 유스) 기술이 상용·실전 단계로 연결될 수 있는 생태계를 설계합니다. NDIS뿐만이 아닙니다. 미 국방부는 유연한 계약 운영과 함께 신속 조달 협정(Other Transaction Authority·OTA), 고속 시제품 제작(Rapid Prototyping), 실증 사업 같은 제도로 방산 시장 진입 장벽을 낮췄습니다."
※ OTA는 미 연방정부가 빡빡한 연방조달규정(FAR)에서 벗어나 신기술을 보유한 혁신 기업과 쉽게 손잡을 수 있게 만든다. 듀얼 유스, 시제품 제작, 기술 검증 후 수의계약을 가능케 한다. 고속 시제품 제작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만들어 테스트한 다음 품질을 개선하는 반복적 접근 방식이다. 실증 사업은 미 국방부가 새 기술이나 개념의 잠재력을 헤아리기 위해 시행한다. 정식 개발 계약을 체결하기 전 소규모로 신기술이나 시제품을 시험해 실용성, 효과를 검증한다.
"팔란티어, 안두릴은 실증 사업으로 기술력을 검증받은 뒤 대형 국방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빠르게 역량을 축적했습니다. 이는 기술만으로 이뤄진 게 아닙니다. 미 국방부 지원과 실증, 조달, 협력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따라서 한국형 팔란티어와 안두릴을 육성하려면 민군 융합 신기술 채택, 신속 조달, 유연한 계약, 성과 기반 대형 실증 사업 확대를 비롯한 정책적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대전 방산혁신클러스터 종합지원센터 구축안.@방위사업청
ㅡ정부가 방산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방산클러스터가 한국형 팔란티어, 안두릴을 꿈꾸는 중소기업들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 방산혁신클러스터는 일정 지역에 방산 발전과 연관된 혁신 주체들이 모인 집합체다. 이들은 기능적 연계, 공간적 직접을 바탕으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다.
"방산혁신클러스터 건설은 분명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짧은 시간 내에 구체적인 성과를 기대하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클러스터란 산업 생태계가 갖춰지고 다양한 기술 기업이 유기적으로 공조할 때 비로소 효과를 발휘합니다. AI, 반도체 같은 핵심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의 연계가 부족한 상태에서 방산업체만 모아놓은들 그 회사들이 팔란티어와 안두릴처럼 크긴 어렵습니다."
"이를 고려해 단기적 성공 사례나 물리적 집적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인 산업 생태계 조성과 기술 연계 기반 형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중소 벤처기업들이 실질적으로 혁신 역량을 향상할 수 있도록 민간·군수 협력, 개방형 테스트베드(시험 무대) 마련, 이종 분야 네트워킹 지원도 해야 합니다."
ㅡK방산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제도적으로 유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입니까.
"FAR, 국방보완조달규정(DFARS), 무기획득절차(Adaptive Acquisition Framework·AAF)를 충분히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제안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기본입니다. 미국 조달 시장은 가격 경쟁만으로 결판나지 않습니다. 기술적 우수성은 물론 유사한 과거 실적,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를 중요하게 봅니다. 아울러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영문 제안서 작성, 철저한 법률 검토와 리스크 관리까지 해내야만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습니다. 지식재산권, 수출 통제, 시설비밀인가등급(FCL), 사이버안보등급(CMMC)을 포함한 핵심 규제 준수 여부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 AAF는 유연하면서 속도감 있는 무기 체계 획득 체계다. DFARS가 엄격한 법규라면 AAF는 효율적인 사업 관리에 초점을 맞춘 가이드라인이다. FCL은 국가 기밀 정보에 접근하거나 생선, 보관할 자격을 미 정부가 부여하는 행정적 승인이다. CMMC는 방산 물자 거래 과정에서 기밀 유출을 막고자 미 국방부가 도입한 방산업체 사이버 보안 평가·인증 제도다. CMMC 레벨 1이 기본, 2가 고급, 3이 전문 등급이다. 레벨 3은 미국 내 비닉 사업 위주여서 한국엔 적용되지 않는다. 비닉(祕匿)은 비밀스럽게 감춘다는 뜻이다.
ㅡ미국에 비춰 한국 국방 조달 제도에 개선할 측면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가격보다는 기술력, 과거 실적, 제안 완성도 같은 정성적 요소에 점수를 줘야 합니다. 또한 미국처럼 입찰 정보를 전면 공개하고 평가 과정에 외부 민간 전문가를 참여시켜 절차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여야 합니다."
"더불어 실패를 전제로 한 연구·개발을 가능케 해야 합니다. 예상한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로 치부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실패를 개선과 혁신의 계기로 여겨야 합니다. 그런 선순환 구조가 있어야 K방산 경쟁력 증진을 뒷받침할 창의적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ㅡ유럽 국방 조달 시장은 미국과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K방산 기업이 유럽 시장을 공략할 때 유념할 대목도 설명해 주십시오.
"유럽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시장입니다. 유럽연합(EU)은 미국산 무기 의존도를 낮추고자 자체 조달 역량과 공급망 강화, 산업 공동체 결속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K방산 기업들은 단독 진출보다는 현지 업체와의 합작이나 다국적 컨소시엄 결성 등을 활용해 유럽 생태계와 긴밀히 연계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유럽 속에 K방산 협업 체제를 구축하잔 얘깁니다. 그리하면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유럽은 환경, 노동, 보안 규제가 매우 엄격합니다. 이러한 비기술적 요구까지 충분히 인지하고 대응책을 세우지 않으면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평가 단계에서 탈락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유럽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야 합니다."
ㅡ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재건 사업이 개시될 때 한국 기업들이 실적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크라이나 재건은 인프라 복구를 넘어 첨단 기술과 방산까지 포함된 종합적 미래 재건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사업에서 한국 기업이 결실을 얻으려면 몇 가지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정부, 산업계, 외교·조달, 학계 인사들이 모인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크라이나 조달 규정과 계약 관행을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EU, 세계은행, 유럽부흥개발은행처럼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깊이 관여할 국제기구와 협업할 토대도 닦아야 합니다. 길게 보면 기술 이전, 현지화, 사회적 책임 이행을 해나갈 방안까지 세워야 합니다."
카이스트 방산수출과정 홍보 포스터.@카이스트 을지연구소
ㅡ카이스트 을지연구소에서 방산 수출 전문가 양성에 애써 오셨습니다. 조달 교육 여건에 보완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방산수출과정은 실무 중심 교육으로 높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전문성과 현장성을 아우르는 한국 유일의 방산 수출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라고 자부합니다. 오는 9월엔 제5기 교육도 예정돼 있습니다."
"다만 비즈니스 현장의 높은 수요에 비해 교육 공급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적극적인 정부 지원을 통해 방산수출과정을 중소기업 역량 신장과 글로벌 진출을 뒷받침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숙시켜야 합니다. 군·공공·기업 간 교차 훈련 확대, 지역 간 교육 기회 불균형 해소, 온라인 콘텐츠 개발, 해외 전문가 초청을 통한 외연 확장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국방 조달은 구매 행위를 넘어 K방산 관련 국가 전략과 직결됩니다. K방산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려면 전략적 사고, 국제 이해, 실전 역량을 겸비한 조달 전문가 양성이 필수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