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한미정상회담서 국방비 인상 계획 공식화
미국측 요구 수용하고 한미동행 현대화 큰 틀 수용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정부가 국방비 인상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꾸준히 요구해온 동맹국 방위비 증액 요구에 한국이 사실상 응답한 것이다.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큰 틀에서 한국이 수용 가능한 카드를 전략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도 높은 한국 국방비 수준=국방부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국방예산은 61조2469억 원이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2.32%에 해당한다. 한국은 경제 규모 대비 국방비 지출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목표치인 ‘GDP 대비 5%’에는 크게 못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에 이어 아시아 동맹국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다. 나토는 지난 6월 정상회의에서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5%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역시 같은 압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상 폭과 현실적 제약=현재 한국이 GDP 대비 5%를 맞추려면 국방비를 두 배 이상 늘려 약 132조 원까지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국가 재정 여건상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이미 확정된 2025∼2029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한국 국방예산은 2026년 66조7000억 원, 2027년 72조4000억 원, 2028년 78조3000억 원, 2029년 84조7000억 원 수준으로 점진적 증가세를 보인다. 즉, 4년 뒤에도 국방비는 GDP 대비 3%에 미치지 못한다는 계산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직접 국방비’ 외에도 군 공항 이전, 연구개발(R&D), 국방 관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을 간접 국방비로 산정해 총액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세종연구소 신범철 수석연구위원은 “나토가 간접비를 포함해 5% 기준을 충족하려 한 것처럼, 한국도 중기계획 조정만으로 트럼프 행정부와 합의점을 찾을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늘어난 국방비, 어디에 쓰이나=이재명 대통령은 국방비 증액이 “스마트 강군 육성을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주요 사용처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북핵·미사일 대응력 강화다. 한국은 북한의 고도화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킬체인(선제타격 능력), 대량응징보복(KMPR) 능력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늘어난 국방비는 정찰위성과 초음속 요격체계,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 확충에 쓰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준비다. 한미 연합방위체제에서 한국군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지휘·정보·감시 능력과 핵심 전력 확보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지휘통제체계, 첨단 사이버전력, 전자전 능력 등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전망이다.
셋째, 국방 R&D 및 인공지능 무기체계 개발이다. 드론, 무인전투체계, 인공지능(AI) 기반 전력 운용 등 ‘스마트 국방’ 투자가 증액분의 또 다른 축이 될 전망이다. 방위산업 수출 확대 전략과도 연계돼 있어 국내 산업계에도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전문가 시각=외국 군사 전문가들은 한국의 국방비 증액 움직임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 군사전문매체 디펜스 뉴스는 최근 분석에서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국방비 기준에 즉각적으로 도달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지만, 점진적 증액과 간접비 반영으로 ‘부분적 충족’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영국 IIS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리처드 콜리어 연구원도 “한국은 이미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이 상당히 높은 국가”라며 “재정 건전성을 고려할 때 5% 목표는 과도하지만, 미사일 방어망과 첨단 무기체계에 대한 선택적 투자 확대는 동맹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향후 쟁점=관건은 인상 폭과 시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5%’라는 구체적 수치를 압박하지만, 한국 정부는 단계적 인상과 간접비 산정 확대를 통해 절충점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방위비 증액 외에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남아 있어, 국방비 인상이 향후 더 큰 협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 국방비 증액 발표는 한국이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동맹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그러나 동시에 재정 부담과 국내 정치적 논란을 감수해야 하는 과제를 남겼다. 결국 한국의 국방비 증액은 얼마나, 어떻게 늘릴 것인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