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전쟁영화 이야기(30)] 전쟁영화 공식 뒤엎은 웰컴 투 동막골

전쟁 없는 산골마을을 통해 전쟁의 본질을 묻다
과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은 휴머니즘 연출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뉴스임팩트 자료사진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뉴스임팩트 자료사진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기자] 총성이 멈춘 곳에서, 사람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온다.

박광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 ‘웰컴 투 동막골’(2005)은 전쟁을 다루는 수많은 영화들 사이에서 이례적이다. 피와 총탄, 이념과 전략으로 가득한 전쟁영화의 공식을 뒤엎고, 오히려 전쟁이 없는 마을을 통해 전쟁의 본질을 묻는다. 그 마을의 이름이 바로 ‘동막골’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우연히 서로 다른 진영의 군인들이 동막골이라는 산골 마을에 모인다. 국군, 인민군, 미군—그들은 모두 서로를 적이라 부르며 총부리를 겨눈다. 그러나 그 마을에는 적도 편도 없다. ‘전쟁’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는 주민들, 바보처럼 순박하고, 때로는 어처구니없이 엉뚱한 그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본연의 선함을 되비춘다.

이 영화가 품은 정서는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과 이념이 도달하지 못한 순수에 대한 향수이자 비판이다. 동막골은 어쩌면 전쟁 이전의 조선, 혹은 인류가 타락하기 이전의 ‘에덴동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 발을 디딘 군인들은 점차 본래의 인간성으로 회귀한다. 적군이었고, 살인자였던 그들은 이곳에서 농사도 짓고, 돼지도 몰고, 아이와 함께 논다. 전쟁은 멀고, 생명이 가까워진다.

“동심의 언어로 말하는 반전의 메시지”

‘웰컴 투 동막골’의 가장 큰 미덕은 ‘진지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풀어낸 솜씨’에 있다. 이 영화는 군사적 긴장감보다는 사람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는 과정을 정성스럽게 그려낸다. 그리고 그 감정은 과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다. 마치 오랜 친구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정직함과 진솔함이 묻어난다.

강혜정이 연기한 '여일'은 동막골의 순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해맑은 미소는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 전쟁 밖의 시선을 대변한다. 정재영, 신하균, 임하룡, 서민정, 류덕환 등 다양한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인간적인 군인을 그려냈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한 것은 바로 배우 간의 호흡과 절제된 연기였다.

음악 또한 이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일본의 유명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선율은 동막골의 평화를 음악으로 구현해낸다. 그의 음악은 감정을 자극하기보다 감싸준다. 그것은 전쟁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따뜻한 접근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웰컴 투 동막골’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거대한 비극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외부 세계, 즉 군사권력이 마을을 발견하면서 순수와 폭력의 충돌이 발생한다. 주인공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동막골을 지킨 것은 총과 전략이 아니라, 한 줌의 인간애와 자기희생이었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절정을 맞는다. 적이 아닌 사람, 이념이 아닌 생명, 승리가 아닌 평화. 박광현 감독은 무력 충돌이라는 거대한 주제 앞에서도 담담하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이념의 회색지대’로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치나 이념에 대한 해석이 아닌, 잊혀진 인간성의 회복을 말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 가운데 가장 ‘비전쟁적인 전쟁영화’라 할 수 있다. 총성이 거의 없는 이 영화는, 오히려 더 날카롭게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다. 말하지 않고도 말하는 것, 보여주지 않고도 울게 만드는 것—그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그때 그 마을을 기억해야 할 이유”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웰컴 투 동막골’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누구를 ‘적’이라 부르고 있는가? 우리는 정말 다르기만 한 존재인가? 그리고,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가?

동막골은 실재하지 않는 공간이지만, 그 정신은 현실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평화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작은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된다는 것. 영화는 그 소중한 진리를, 가장 유쾌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전해준다.

총보다 강한 건, 웃음이고 사람이다.

그 단순한 진실을, 우리는 잊고 살았다. 이 영화는 그 진실을 다시 일깨운다.

늦게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다.

평점: ★★★★☆ (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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