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가 계약 한계 드러나며 ‘도입 대수 축소’ 현실화…각국 방위 재정 압박 불가피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가 전 세계 각국에서 도입되고 있지만, 예상보다 높은 가격 상승이 각국 정부와 의회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최근 스위스와 일본 사례는 그 대표적인 예다.
◇ 스위스, 추가 비용 최대 13억 프랑(1조6300억 원)
스위스 정부는 2021년 F-35A 36대를 60억 스위스 프랑(약 7조 5500억 원)에 구매하기로 결정하고, 2022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 금액에는 항공기 자체뿐 아니라 훈련·탄약·인프라 구축까지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올해 여름 발표에 따르면, 최종 구매 비용은 당초 예상보다 적게는 6억5000만 프랑(8200억 원)에서 많게는 최대 13억 프랑(1조 6300억 원) 늘어날 전망이다. 스위스 국방부 산하 조달청(Armasuisse)은 “현재 경제 불확실성을 고려한 위험 완충치”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고정가 계약에 실패한 것을 자인한 셈이다.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통해 60억 프랑 한도의 예산을 승인받은 상황이라, 이번 비용 증가는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야당은 재투표를 요구하고 있으며, 의회는 조달 과정에서 발생한 ‘미국과의 오해’를 규명하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가동했다. 다만 스위스 정부는 계약 파기나 대안 기종 검토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도입 대수 축소 가능성만 열어둔 상태다.
◇ 일본도 예외 아냐…2026년 방위예산에서 F-35 비용 급등
비용 증가는 스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역시 2026 회계연도 방위예산에서 F-35 도입 비용이 올해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현재 F-35A와 F-35B를 합쳐 147대 이상을 도입할 계획인데, 환율 변동과 부품 조달 비용 증가, 그리고 미국 측의 단가 조정이 맞물리면서 예상치보다 더 많은 예산을 책정해야 했다.
특히 일본 엔화 약세가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 달러로 산정되는 F-35 가격이 환율 요인만으로도 수십억 엔 단위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방위성은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차질에 따른 국제적 추세”라며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 美국방부, 각국 비용 증가 불만에 “인플레이션, 원자재 가격 상승 때문”
미국 국방부도 할 말은 있다. 인플레이션,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 등 비용 증가 요인이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도입한 고율 관세도 단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은 스위스에 대해 유럽 내 최고 수준인 39%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정치적 불만도 커지고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따져보면, F-35 비용 상승에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먼저 복잡한 부품 구조와 원자재 가격이다. F-35는 첨단 전자장비와 센서, 스텔스 코팅 등에서 다른 전투기보다 복잡하다. 티타늄, 특수 합금,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의 글로벌 가격 상승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생산 규모와 공급망 문제도 비용상승의 원인이다. 팬데믹 이후 공급망 병목 현상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항공우주 분야는 단일 부품이 지연돼도 전체 납품 일정이 밀리면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미국 내 정치·경제 변수도 한몫 하고 있다. 관세 정책, 보조금, 노동 비용 상승 등이 맞물려 생산 단가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미국 정부의 반도체·방위산업 전략 개입이 강화되면서 수출 단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마지막으론 고정가 계약의 어려움을 들 수 있다. 계약 후 실제 인도까지 수 년에 걸쳐 장기간 생산해야 하는 무기 특성상 ‘고정가 보장’이 쉽지 않다. 스위스 사례처럼 초기 협상에서 확정 단가를 얻지 못하면 매수자가 이후 인상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 비용 올라도 계약 취소 어렵지만, 도입 대수 축소 등 갈등 불가피
F-35는 이미 미국을 포함해 10여 개국 이상이 도입을 확정한 사실상의 ‘글로벌 표준 스텔스기’다. 따라서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계약 취소나 대체 기종 선택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도입 대수 축소, 인도 지연, 예산 갈등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방위비를 대폭 늘리고 있어, F-35 단가 상승이 다른 국방 사업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역시 방위비 GDP 2%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나, 고비용 전투기 도입은 국민적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다.
따라서 F-35의 가격 상승은 첨단 무기체계의 글로벌 의존 구조와 국제 경제 불안정성을 동시에 반영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각국은 단순히 전투기 가격만이 아니라, 공급망 관리·환율 리스크·정치적 협상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