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 방산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특히 유럽은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무기 체계를 서둘러 도입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 방산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현대로템의 K2 전차가 있다. 폴란드와 체결된 1000대 규모의 공급 계약은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기술 이전·현지 생산·장기 정비 협력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수출 모델로 평가받는다. <편집자주>
[뉴스임팩트=최준영 대기자] 폴란드와의 K2 전차 계약은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현지 조립·생산’과 ‘기술 이전’이 포함된 형태였다. 이는 기존 서방 방산 강국들이 극히 꺼려온 방식이다. 독일이나 미국은 핵심 기술 이전에 극도로 신중하며, 현지 생산을 허용하더라도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반면 한국은 보다 유연한 협상 전략을 내세웠다. 폴란드에 대해 주요 전차의 현지 조립, 개량형 K2PL 생산, 부품 현지화까지 약속했다. 단순히 무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폴란드 방산 산업을 함께 성장시키는 파트너십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기술 이전, 리스크일까?
일부 투자자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기술 이전 전략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다. 핵심 기술이 유출돼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현지 생산 비중을 확대할 경우 국내 생산 물량 축소로 인한 매출 감소도 우려할 대목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국이 자립화할 경우 한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축소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리스크는 실제로도 방산 업계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서방 강국들이 기술 이전에 인색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K2PL 계약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 이전이 곧바로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대로템의 공급망 중심성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핵심 부품 등 주도권은 한국에
전차의 동력 계통, 사격 통제 장치, 전자 장비 등 핵심 요소는 여전히 한국에서 공급한다. 현지 조립은 가능하지만, ‘뼈대’가 되는 부분은 한국 기술 의존도가 유지된다.
설계·검수 권한 역시 한국이 유지한다. 생산이 현지에서 이뤄지더라도, 한국이 설계·검수·표준화 과정을 통제하기 때문에 이는 장기적인 부품 호환성과 유지보수 계약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그레이드 및 MRO 시장 확보도 빼놓을 수 없다. 전차는 납품 이후에도 지속적인 유지보수·부품 교체·성능 개량이 필요하다. 폴란드가 K2를 30년 이상 운용하려면, 한국 기업과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즉, 현지 조립 생산은 단기적으로는 기술 이전 같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네트워크 확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기술 이전을 리스크가 아닌 레버리지로”
영국의 방산 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폴란드 K2 계약을 두고 “한국은 기술 이전을 리스크가 아니라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한다”고 평가했다.
매체에 따르면, “폴란드는 자국 산업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의 계약을 환영했으며, 한국 기업은 현지 조립을 허용하는 대신 장기간에 걸친 부품·기술 지원 계약을 확보했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의 디펜스 뉴스는 “서방 방산 강국들이 ‘독점적 공급자’ 모델을 고수하는 반면, 한국은 ‘협력적 공급자’ 전략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며 “이는 단순한 무기 판매가 아니라 산업 협력 동맹으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기술 이전은 단순히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고, 새로운 부가 시장을 여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가장 큰 수익은 무기 판매 자체보다 유지·보수·정비(MRO)에서 나온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과거 방산 강국들이 독점적 공급자 모델을 고수했다면, 한국은 “함께 키우는 산업 동반자”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앞으로 체코·루마니아·노르웨이 등 다른 국가들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