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에서 전쟁으로… 트럼프, 상징의 정치에 불 붙이다
76년 만에 되살아난 ‘전쟁부’, 미 군사정책 논란의 불씨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미국 국방부가 76년 만에 ‘전쟁부(Department of War)’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물론 이는 공식 명칭 변경이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허용한 보조적 명칭 사용이다. 그러나 그 상징성은 워싱턴 안팎에서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전쟁부에서 국방부로, 다시 전쟁부 부활=1789년 8월 7일 출범한 전쟁부는 미국 육군을 지휘하고 유지하는 핵심 내각 부처였다. 해군부가 1798년 독립하기 전까지는 해군 업무까지 겸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방어 중심의 군사 조직 체계 개편에 나섰다. 1947년 국가안보법(National Security Act)에 따라 전쟁부는 육군부와 신설된 공군부로 분리되고, 독립된 해군부와 함께 국가군사기구(NME)를 구성했다. 이어 1949년 이 기구가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로 개칭되면서 ‘전쟁부’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방’에서 ‘전쟁’으로 방점 이동=9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국방부가 ‘전쟁부’라는 보조 명칭을 공식 행사, 문서, 의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Secretary of War(전쟁부 장관)”, “Deputy Secretary of War(전쟁부 부장관)” 등 표현이 다시 등장하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방부라는 명칭이 “진보 진영의 문화 아젠다, 이른바 ‘워크(woke)’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방어(defense)가 아니라 전쟁(war)을 준비해야 한다”며, “1차·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지만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테러와의 전쟁’에서 정치적 올바름 때문에 승리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법적 개명은 의회 입법절차 필요=이번 조치는 어디까지나 ‘보조 명칭’의 허용이다. 공식 명칭 변경에는 의회의 입법 절차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에게 입법·행정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으며, 실제로 공화당 의원들이 발의한 개명 법안이 연례 국방수권법(NDAA)에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펜타곤 내부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공식 웹사이트 defense.gov는 war.gov로 리디렉션되고, 건물 표지판과 내부 문서에서도 ‘War Annex’ 같은 표현이 쓰이기 시작했다.
◇군사 전문가들 엇갈린 반응=군사전문 매체와 분석가들은 엇갈린 시각을 보였다.
배런스는 이번 조치가 국제 질서에 근본적 변화를 주지는 않지만, 방산·항공 관련 주식에는 단기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입법을 거치지 않고 보조 명칭을 도입한 점을 지적하며, 이는 의회와의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위주의적 색채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뉴욕 매거진은 트럼프의 결정이 ‘광인 전략(madman theory)’과 연결된다며, 복고적 용어를 통해 권위주의적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스웨덴 매체 옴니는 간판·문서·유니폼 교체 등 로지스틱 비용이 수천만 달러에 달할 수 있으며,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더욱 공격적인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승리의 언어’와 정치적 노림수=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실질적 군사 정책 변화라기보다는 정치적·상징적 선언에 가깝다. ‘국방(Defense)’이라는 방어적 개념 대신 ‘전쟁(War)’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미국의 군사력을 적극적·공격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같은 개명 추진이 의회의 문턱을 넘어 정식 명칭 변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76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전쟁부’라는 단어가 다시금 워싱턴 정치의 중심 무대에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과 세계가 주목할 만한 변화임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