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정상회담 결산 ③] 트럼프의 시간은 가고, 시진핑의 시간이 왔다

‘딜의 제왕’ 트럼프와 ‘질서의 설계자’ 시진핑, 2025년 부산 미중정상회담이 남긴 향후 권력 방향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30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30일 정상회담을 마치고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에서 열린 미중정상회담은 세계 질서 재편의 서막이자, 패권의 방향이 바뀌는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은 표면적으로는 관세, 투자, 희토류, 펜타닐 문제를 다룬 실무적 대화였지만, 그 이면에는 ‘21세기 패권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치밀한 심리전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회담은 미중 힘의 균형에서 트럼프의 압박을 통한 ‘거래의 시대’가 저물고, 시진핑의 인내에 기반한 ‘전략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딜의 대통령’ 트럼프, 즉흥적 협상의 한계 드러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경제’를 중심으로 한 전형적인 협상 방식을 구사했다. 그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1년 유예를 조건으로, 미국의 대중 관세를 현행 55%에서 45%로, 10%포인트 인하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거래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승리처럼 보였다. 희토류는 반도체, 전기차, AI 장비 등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로, 중국이 전 세계 공급의 70% 이상(정제량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1년간의 유예는 미국으로선 숨통을 틔우는 ‘시간 벌기용 합의’였다.

하지만 이 합의는 트럼프 특유의 단기성과 중심주의를 그대로 드러냈다는 관측이다. 그는 회담 직후 “중국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고 선언하며 무역협상에서 승리했음을 과시하는 단기 정치 효과를 노렸다. 그러나 글로벌 IB 모건스탠리의 리처드 곽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접근은 근본적 구조 개혁이 아니라 일시적 휴전”이라며, “미국은 여전히 핵심 자원에서 중국 의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30일 미중정상회담을 마치고 곧바로 미국으로 출발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30일 미중정상회담을 마치고 곧바로 미국으로 출발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시진핑, ‘공급망의 제왕’으로 부상

시진핑 주석은 회담 내내 절제된 태도를 보였지만, 협상 판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은 그였다. 그는 희토류 수출통제 유예라는 제한적 양보로, 미국의 관세 인하라는 구체적 보상을 얻었다. 이는 단순한 거래가 아닌 공급망 주도권을 장기적으로 고착화시키는 전략적 승리였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번 합의를 통해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 회복과 기술자립 가속화를 위한 시간을 확보했다. 시진핑은 회담 직후 “자국 자원과 기술의 국산화를 가속하라”고 주문했고, 이에 따라 중국 내에서는 ‘신(新)중국표준운동’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질서에 대한 도전이며, 나아가 ‘중국식 세계질서’ 구축의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중국 인민대 장웨이 교수는 “시진핑은 트럼프처럼 눈앞의 합의를 쫓는 협상가가 아니라, 질서의 설계자”라며 “그는 1년짜리 양보로 10년짜리 구조적 우위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리무진 외교’로 드러난 상징의 전쟁

회담 현장에서 시진핑이 타고 등장한 전용차 ‘훙치 N701’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중국판 롤스로이스’라 불리는 이 차량은 중국 기술 자립의 상징이자 ‘국산 자존심’의 표현이었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 전용차 ‘캐딜락 비스트’를 타고 등장하며 미국의 강대국 이미지를 과시했다.

두 차량의 대조는 이번 회담의 성격을 압축한다. 비스트는 힘과 방어의 상징이었고, 훙치는 자립과 자존의 상징이었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를 “트럼프의 방어적 현실주의와 시진핑의 공세적 자주주의가 부딪힌 장면”으로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차량의 대결이 아니라, ‘리무진 외교’로 표현된 국가 정체성의 경쟁이었다는 지적이다. 트럼프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 아래 과거의 산업 영광을 복원하려 한다면, 시진핑은 ‘중국몽’을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재설계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국일정.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한국일정. @연합뉴스

트럼프는 귀국, 시진핑은 APEC 중심으로

회담이 끝난 후 트럼프가 귀국길에 오른 반면, 시진핑은 부산에 남아 APEC 정상회의, 한중 및 한일 정상회담 등 연쇄 외교 일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포용적 경제’와 ‘공동번영’을 강조하며, 중국이 주도하는 다자주의적 국제질서 구상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UBS 글로벌리서치는 “시진핑은 회담 이후 외교 무대를 장악하며, 글로벌 공급망·기술·자원 구조에서 중국의 중심성을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트럼프는 귀국 후 셧다운과 관련된 의회 대응 등 국내 정치 이슈에 매몰되며 국제 리더십에서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이번 미중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단기적 경제성과를 얻었지만, 중국은 장기적 협상 주도권과 질서 재편의 명분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골드만삭스의 리처드 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시간은 거래의 시대였지만, 시진핑의 시간은 구조의 시대”라며 “이번 회담은 미중 경쟁이 ‘딜의 싸움’에서 ‘질서의 경쟁’으로 전환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이제 세계는 트럼프가 아닌, 시진핑에 주목하고 있다. 아시아 순방을 통해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던 트럼프의 시간은 끝났고, 시진핑의 시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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