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공정개혁 3부작 ②] 원청 중심 수직구조 ‘3중고’에 짓눌린 협력업체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KAI에 대한 공정위 조사 계기로 단가 후려치기·기술 탈취·납품 리스크 전가 등 주목…“대기업 중심 구조 바뀌지 않으면 방산 생태계 지속 성장 어려워”

이재명 대통령이 ADEX 2025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ADEX 2025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한국 방위산업(K-방산)은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세계 시장에서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수출 효자 산업’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의 이면에는 중소 협력업체들이 감내해야 하는 불공정 구조와 현실적 고충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 전략 산업’이라는 명분 아래, 방산 생태계의 불균형과 갑질 구조가 오랫동안 은폐되어 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하도급 중심의 수직 구조—‘원청 중심 시스템’의 굴레

방위산업은 특성상 대기업이 개발·생산·수출 전 과정을 총괄하고, 수백 개의 중소 협력업체가 부품을 납품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러한 수직적 거래 체계에서 원청이 사실상 ‘절대적 권한’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산 부품업체 대표는 “원청의 요구는 사실상 ‘명령’”이라며 “납기일을 앞당기거나 단가를 낮추라는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한 번 불이익을 받으면 다음 사업 입찰 기회가 막히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기술자료 요구’와 ‘단가 인하 압박’은 일상화돼 있는 게 현실이다. 일부 대기업은 “품질 검증”을 명목으로 협력업체의 핵심 기술 도면이나 설계 데이터를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자료는 향후 원청의 자체 개발로 이어지며,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보안’이라는 이름의 불공정 은폐

방산 분야는 특성상 계약 내용과 단가, 기술정보 등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이러한 ‘보안 체계’가 불공정을 가리는 방패막이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방산 계약은 대부분 비공개라서 부당한 단가 인하나 대금 미지급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며 “공정위나 국방부에 신고해도 계약 비밀을 이유로 사실관계 확인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협력업체는 납품 지연이나 품질 보증 문제에 대한 책임을 과도하게 떠안으며, 원청의 리스크가 고스란히 전가되는 사례가 잦다.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대기업 중심 R&D 구조

정부의 방위산업 지원정책 또한 중소기업에게는 먼 이야기다.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R&D 및 수출 지원 프로그램 대부분이 대기업 중심 구조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협력업체는 기술개발 여력이 부족하고, 신기술을 보유하고도 사업화 단계에서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한 중소 방산기업 연구소장은 “국방과학연구소나 방사청의 과제는 대부분 원청 위주로 배정돼 협력업체는 참여만 할 뿐, 독립적인 기술개발 기회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이 주도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생태계의 다양성과 혁신이 사라진다”고 경고했다.

방산업계에선 대기업 중심의 R&D 구조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연합뉴스
방산업계에선 대기업 중심의 R&D 구조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연합뉴스

“중소기업이 살아야 K-방산이 산다”

전문가들은 방산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협력업체 보호 정책과 공정한 거래 구조 확립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방위산업학회 관계자는 “K-방산의 성장은 대기업의 기술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수십 년간 부품을 납품해온 중소기업의 축적된 경험과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이들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K-방산 전체의 혁신도 멈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공정위의 조사는 일시적 처벌로 끝나서는 안 되며, 장기적으로 중소 협력업체의 권익 보호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방산은 단기 수출 실적을 넘어 국가 전략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토대가 되는 협력업체들이 불공정 구조 속에서 경쟁력을 잃는다면, 그 성장은 모래 위의 성에 불과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이번 조사와 정부의 공정개혁 기조는 단순히 ‘갑질 근절’을 넘어, 방산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첫걸음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공정한 생태계 구축이야말로 K-방산의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출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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