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거래 없이는 ‘K-방산’의 미래도 없다”…국가 안보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한 제도 개혁 시급히 마련해야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이번 공정거래위원회의 방산업체 하도급 갑질 전면조사는 한국 방위산업이 수출 호황 속에서도 근본적인 체질 개선의 과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단기적인 수출 실적에 가려졌던 구조적 불공정과 거래 관행을 바로잡지 않으면 ‘K-방산’의 성장세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방위사업청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방산 공정거래 제도화에 본격 착수해 눈길을 끌고 있다.
▌ 관계기관, 방산 거래 투명성 강화 논의 착수
공정거래위원회는 현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AI 등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현장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방산 분야 전반의 거래 투명성 강화 제도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위사업청과 산업통상자원부 역시 공정위와 협업해 ‘방산 공정거래 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 협의체는 기술자료 보호, 단가 인하 금지, 표준계약서 도입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대기업-중소 협력업체 간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임 방사청장에 개혁 성향이 강한 이용철 변호사가 임명된 것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방산은 단순한 납품 산업이 아닌 국가 안보 인프라의 일부”라며 “공정한 거래가 유지되어야 기술력과 신뢰가 쌓인다”고 강조했다.
▌ 주요국의 공정거래 제도, ‘투명성과 협력’에 초점
주요 방산 강국들은 이미 공정거래를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미국은 ‘디펜스 인더스트리 베이스(DIB)’ 법 체계를 통해 협력업체의 기술자료 보호와 불공정 계약 방지를 법률로 명시하고 있으며, 불공정 행위 적발 시 국방부 입찰 자격을 제한하는 강력한 제재를 병행한다.
영국은 국방조달청(DE&S) 산하에 ‘공정거래 담당관’을 두어 납품 단가 협상과 기술이전 과정을 감독한다.
프랑스 또한 국가 방산위원회(CND)가 중소기업의 지식재산권 보호를 지원하고, 기술자료 요구 시 반드시 계약상 명시된 절차를 따르도록 의무화했다.
이러한 제도들은 공통적으로 “투명한 절차와 협력적 관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제도 개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기술자료 보호와 납품단가 연동제, 제도화 논의 본격화
국내에서는 ‘기술자료 보호법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원청업체가 협력사의 핵심 기술자료를 요구할 경우, 해당 자료의 범위와 사용 목적을 명확히 규정하고 사후 감사 절차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또한 ‘납품단가 연동제’를 방산 분야에도 도입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협력업체에 불리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정위는 이와 함께 ‘방산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제정해, 기술탈취·단가 인하·대금 지연 등 반복적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 정부, ‘상생형 방산클러스터’ 추진
산업부는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과 수출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는 ‘상생형 방산클러스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 클러스터는 연구개발(R&D)부터 해외시장 진출까지 지원하며, 대기업 중심의 방산 생태계를 벗어나 협력형 산업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방산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동유럽·중동 지역에 중소기업 전용 기술지원센터를 설치해 글로벌 파트너십 기반을 확장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전문가들은 방산 공정거래 제도화가 단순한 산업 개혁을 넘어 ‘국가 안보 시스템의 재설계’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 국방정책 연구원은 “불공정한 거래가 누적되면 중소기업이 기술개발을 포기하고, 결국 방산 수출 경쟁력 전체가 흔들린다”며 “공정한 생태계는 산업 효율이 아니라 안보 신뢰의 문제”라고 말했다.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공정한 생태계 조성이 시급해 보인다. 기술력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력 구조가 정착될 때, 한국 방위산업은 단순한 수출국을 넘어 ‘글로벌 방산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이 곧 방산 경쟁력의 뿌리이며, 그것이 바로 K-방산이 세계 무대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