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일 만의 정부 재가동, ‘승자 없는 싸움’으로 정치적 양극화만 깊어진 미국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43일이라는 역사상 최장 기록을 남긴채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부 기능 정지)이 끝났다. 12일(현지시간) 미 하원은 상원이 통과시킨 단기 지출법안을 찬성 222표, 반대 209표로 가결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즉시 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 10월 1일부터 시작된 셧다운은 43일 만에 막을 내렸다. 2018~2019년 트럼프 1기 때 세워진 35일 최장 기록을 8일 경신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법안 서명 직후 “오늘은 위대한 날”이라며 “민주당의 정치적 셧다운이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는 “2만 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지연되고, 백만 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며 “이 모든 혼란은 민주당의 무책임한 정치놀음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43일간의 마비, 국민이 입은 상처
이번 셧다운의 여파는 컸다. 약 67만 명의 연방 공무원이 무급휴직에 들어갔고, 73만 명은 급여 없이 근무를 이어가야 했다. 국립공원과 미술관, 정부 청사들은 문을 닫았고, 식품 보조(SNAP)와 저소득층 난방비 지원(LIHEAP) 같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재정이 고갈돼 수백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
항공기 운항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항공관제사들의 집단 결근으로 연방항공청(FAA)은 40여 개 주요 공항의 운항 편수를 줄였고, 2만 편 이상의 항공편이 취소 또는 지연됐다. 일부 주정부는 자체 재정으로 연방정부의 공백을 메웠지만, 장기화된 불확실성은 공무원과 민간 계약업체 모두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번 셧다운으로 인해 최소 80억 달러의 경제활동이 손실됐다고 추산했다. 특히 소비 위축과 행정 지연이 맞물리며, 중소기업과 하청업체의 피해가 두드러졌다.
▌ 정치 싸움의 본질은 ‘오바마케어 보조금’
이번 사태의 핵심은 민주당이 요구한 건강보험 보조금 연장 여부였다. 오바마 정부 시절 도입된 건강보험개혁법(ACA·일명 오바마케어)의 세금 보조금이 연말 종료를 앞두자, 민주당은 저소득층 약 2400만 명의 의료비 폭등을 막기 위해 이를 연장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와 보험사에 흘러가는 낭비성 지출”이라며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은 교도소나 정신병원 출신 불법체류자들에게 1조5000억 달러를 주려 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양측은 절충안을 마련했다. 오바마케어 보조금 연장 여부는 12월에 다시 표결하기로 하고, 정부는 내년 1월 30일까지 기존 수준으로 임시 운영된다. 즉, 문제의 본질은 미뤄졌을 뿐 해결된 것은 아니다.
▌ 정치적 승자는 트럼프?
표면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상원에서 민주당 중도파 8명(무소속 1명 포함)이 이탈해 공화당안에 동의하면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깨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질적인 양보 없이 정부 재가동을 이끌어냈고, 공화당은 “민주당의 무모한 셧다운이 끝났다”며 공세를 강화했다.
하원의장 마이크 존슨은 “민주당은 셧다운이 고통을 초래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며 “이번 결과는 전혀 놀랍지 않다. 셧다운은 항상 실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적 상처는 양쪽 모두에게 남았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무의미한 항전이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번 합의를 “비겁한 항복”이라 표현하며 민주당 지도부를 공개 비판했다.
▌ ‘승자 없는 싸움’…남은 과제는 산적
정부 재가동으로 공무원과 연방 기관은 일단 숨통이 트였지만, 완전한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은 지난 셧다운 때 재개관에 나흘이 걸렸고, SNAP과 LIHEAP 등 복지 프로그램은 복원까지 수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미국 정치의 양극화와 의회 기능 마비를 여실히 보여줬다. 건강보험 문제, 이민 정책, 예산 집행 등 국가적 과제가 ‘정치 게임’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셧다운 종료 후에도 “민주당은 국민의 고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며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 그들이 한 일을 잊지 말라”고 경고했다. 반면 민주당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 맞섰다.
▌ 끝나지 않은 셧다운의 그림자
셧다운은 끝났지만 상처는 남았다. 연방정부의 신뢰는 흔들렸고, 국민의 정치 불신은 깊어졌다. 셧다운을 ‘정치적 무기’로 삼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미국 민주주의의 비용은 계속 커질 것이다.
다가올 12월, 다시 열릴 오바마케어 보조금 표결은 이번 사태의 연장선이자 또 한 번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세계 최강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가 다시 마비되지 않기 위해, 양당이 이번 교훈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