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유럽 덮친 보수 물결, 국방비 증액 러시

“안보 불안이 만든 보수의 반격”…유럽, 평화의 대륙에서 군비 경쟁의 대륙으로 전환

재무장을 서두르는 독일 연방군. @연합뉴스
재무장을 서두르는 독일 연방군. @연합뉴스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기자] 2025년 유럽의 정치 지형이 급격히 변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진보와 자유주의가 주도하던 유럽이 이제는 보수·극우 정당의 약진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 변화의 바탕에는 이민 불안, 에너지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그리고 안보 위협의 일상화가 있다. 문제는 이 보수의 부상이 단순한 정치적 흐름을 넘어 국방비 증액과 군사력 강화라는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르펜의 ‘안보국가’ 비전

프랑스의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은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31.5%를 득표하며 정치 중심으로 부상했다. 아직 집권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차세대 권력으로 꼽히는 르펜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잔류를 유지하면서도 “프랑스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국민연합은 국방비를 GDP의 3% 수준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으며, 프랑스 국내 여론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이는 프랑스가 전통적인 ‘사회복지 중심 국가’에서 ‘안보 중심 국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멜로니, 실용보수와 군사현대화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는 보수정권의 대표적 사례다. 그녀는 집권 후 강력한 이민 통제정책과 함께, EU 국방공동체 구상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멜로니 정부는 2025년 예산안에서 국방비를 4% 증액하며, 함정·전투기·사이버방어 분야 투자를 확대했다. 이는 “실용적 보수주의”의 대표적 모델로, 나토 동맹 내에서 이탈리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대안당의 압박 속 ‘재무장 독일’로

전후 독일은 줄곧 ‘평화국가’ 정체성을 유지해왔지만, 대안당(AfD)의 급부상이 그 균형을 흔들고 있다. AfD는 반이민·반EU를 핵심 기조로 삼으면서도, 최근엔 “자국 우선 방위”를 내세워 국방 강화 공약을 제시했다.

이 압박 속에 프리드리히 메르츠 정부는 2025년에도 1000억 유로 규모의 특별 국방기금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독일은 전차, 방공망, 드론 등 첨단 전력 확충에 나서며 사실상 ‘재무장’ 궤도에 올랐다.

네덜란드·스웨덴—중립에서 적극 방위로

네덜란드 자유당(PVV)과 스웨덴민주당은 집권세력은 아니지만, 보수연정의 정책 방향을 좌우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민 제한과 국방 강화를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나토 내 기여도를 높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스웨덴은 2024년 나토 정식 가입 이후, 국방비를 GDP의 2.5%로 상향했다. ‘중립의 상징’이던 북유럽이 이제는 러시아 억제를 위한 전선의 최전방으로 변모한 것이다.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사 앞에서 전시된 군용차와 장갑차. @연합뉴스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사 앞에서 전시된 군용차와 장갑차. @연합뉴스

보수의 부상, 왜 ‘군비 확대’로 연결되는가

보수·극우 세력의 약진은 단순한 이념 변화가 아니라, 안보에 대한 인식 전환을 동반하고 있다. 유럽인들은 러시아의 위협, 중동 불안, 불법 이민의 급증을 보며 “평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수 정당들은 “자국의 힘으로 지키는 유럽”을 내세우며 국방력 강화를 정당화하고 있다. 유럽의회 차원에서도 2025년 상반기 ‘공동방위기금(European Defence Fund)’의 확대가 논의 중이다.

보수의 한계—경제와 안보의 균형

그러나 국방비 증액이 장기적으로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 압박 속에서, 복지예산 삭감에 대한 반발도 커지고 있다.

또한 보수정당 간에도 외교노선이 엇갈린다. 프랑스는 자율안보를, 독일은 나토 일체화를, 이탈리아는 실용적 협력을 각각 선호한다. 즉, “보수의 연합”이 곧 “안보정책의 통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유럽 재무장 시대’의 서막

유럽은 지금 ‘포스트 리버럴’ 시대에서 ‘안보 실용주의 시대’로 이동 중이다. 이민과 복지 대신 안보와 자국 보호가 핵심 정치의제가 됐다. 보수의 부상은 그 상징적 표현이며, 국방비 증액은 그 실질적 결과다.

향후 10년, 유럽이 다시 ‘군사력의 대륙’으로 회귀할지, 아니면 보수와 안보가 조화된 새로운 정치 질서를 구축할지는 좀 더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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