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아베’ 다카이치 총리, 아베노믹스 시즌2 시동…고물가·긴축기조 속 과거 같은 ‘슈퍼 엔저’는 어려울 듯
[뉴스임팩트=최준영 대기자]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이끄는 일본 내각이 출범하면서, 일본 내외에서 다시금 ‘아베노믹스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 증시의 닛케이 지수는 다카이치 총리 선출 당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데 이어 22일에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5만선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여자 아베’라는 별명처럼,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추진한 아베노믹스를 가장 충실히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공언해왔다. 특히 확장적 재정정책과 금융완화 기조에 무게를 둔 점은 유사성이 크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일본의 구조적·대외적 환경이 아베 집권기와 크게 다르다며, 당시와 같은 강력한 경기부양책이나 ‘슈퍼 엔저(초약엔)’ 현상이 반복되긴 어렵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다.
▌ 디플레이션 탈출이 ‘명분’이자 ‘기회’였던 아베노믹스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2년은 장기 디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를 탈출시키기 위한 비상 수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아베 전 총리는 ‘세 개의 화살(재정지출 확대, 통화완화, 구조개혁)’을 통해 경기 부양을 시도했고, 일본은행(BOJ)과의 긴밀한 공조 아래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과 대규모 양적완화가 병행됐다.
이러한 극단적 정책은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 중심의 일본 제조업을 부흥시키는 데 일조했으며, 기업 실적 개선과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정치적으로도 아베 총리는 장기집권을 통해 정책 일관성을 유지했고, 미국 등 서방국가와의 갈등도 비교적 적어 외부 변수의 제약도 크지 않았다.
▌ 인플레이션 국면과 금리 정상화 압력 직면한 현재
반면 다카이치 총리가 직면한 2025년 일본 경제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일본이 더 이상 디플레이션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코로나19 이후 세계적 공급망 불안과 에너지 가격 급등 등으로 인해 일본 역시 3% 이상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경험하며 인플레이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수년간 유지해온 YCC(수익률 곡선 제어) 정책을 완화하고, 금리 정상화에 나선 상황이다.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미 1.5%를 넘었고, 30년물은 3.3%대를 기록 중이다. 이런 국면에서 또다시 대규모 확장 재정과 통화 완화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단순한 물가 상승이 아닌 ‘하이퍼인플레이션’ 위험이 제기될 수 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아베 시절에는 BOJ의 협조가 전제됐지만, 지금은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과 자산매입 축소 등 긴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정책 공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은 오히려 금리 인하 사이클에 진입하고 있어, 미·일 금리차 축소는 엔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 만만치 않은 대외 변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도 다카이치 내각의 경제 정책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 당시 ‘엔저’를 용인하던 미국은 현재 환율 조작, 무역 불균형 이슈에 더욱 민감하다. 만약 다카이치 총리가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취할 경우, 미국의 외교적 반발과 관세 보복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일본 기업이 약엔을 무기로 고율 관세를 회피하려 한다면, 미국의 조치가 현실화될 수 있다.
▌ 엇갈린 시장 반응 “단기적 약세, 장기적 강세 가능성”
실제로 시장은 다카이치 총리 당선 직후 단기적으로는 엔화 약세와 장기 금리 상승으로 반응했다. 이는 아베노믹스 시절을 연상케 한 반응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일본의 통화·재정 여건, 글로벌 금리 흐름 등을 고려할 때 엔화의 점진적 강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증권가의 시각이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다카이치의 정책 기조는 아베와 유사하지만, 당시만큼의 정책 강도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는 일본은행의 긴축 기조가 진행 중이며, 미국은 금리 인하 사이클로 전환 중이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구조적 약세 흐름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제2의 아베노믹스’는 현실적으로 제약 많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정치적으로 아베노믹스를 계승할 준비가 돼 있지만, 경제적·대외적 여건은 이를 전면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고물가, 고금리, 국제질서 변화라는 3중 압박 속에서 ‘슈퍼 엔저’나 극단적 유동성 확대 정책은 과거처럼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본다면, 다카이치 내각의 경제 정책은 상징적인 아베노믹스 계승에 그칠 가능성이 있으며, 시장 역시 이를 감안해 정책의 강도와 효과를 제한적으로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