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다카이치, ‘일본판 CIA’ 신설 추진…왜 경제대국 일본은 첩보전 후진국이었나

다카이치 정부, 국가정보국 신설 통해 정보통합 허브 구축 구상…전후 금기(禁忌) 깨는 대전환 예고

취임 일성으로 '강한 일본'을 외친 다카이치 신임 총리가 국가정보국 신설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취임 일성으로 '강한 일본'을 외친 다카이치 신임 총리가 국가정보국 신설을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내각이 ‘국가정보국(가칭)’ 신설을 추진하면서 일본의 정보체계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그동안 일본은 세계 4위 경제대국이자 주요 7개국(G7)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영국의 MI6, 러시아의 KGB 같은 단일 정보기관을 두지 않았다. 이제 일본은 전후 체제의 금기를 깨고, 정보활동의 ‘중앙집중화’를 시도하려 하고 있다.

전후 체제의 그림자, ‘정보기관=군국주의’의 트라우마

일본이 지금까지 강력한 정보기관을 만들지 못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에 뿌리를 둔다. 전쟁 시기 일본군 헌병대와 내무성이 정보·첩보활동을 독점하며 국민을 감시했던 기억은, 패전 후 일본 사회에 깊은 반감을 남겼다.

전후 헌법은 군사행위를 사실상 금지했고, 국가 안보는 미일안보조약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재편됐다. 이에 따라 정보활동 역시 자주적인 시스템보다는 미국 정보망에 종속된 구조로 정착됐다.

즉, 일본은 “정보는 군사력의 일부”라는 인식 아래, 군사화와 권력 남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CIA식 조직의 창설을 스스로 억눌러온 셈이다.

부처 분할형 정보체계 ‘누가 컨트롤타워인가’

현재 일본의 정보기관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다. 내각관방 산하의 내각정보조사실(CIRO)이 총리 직속 조직으로 국가정보를 분석하지만, 대외첩보 기능은 거의 없다.

법무성 산하에는 공안조사청(PSIA)이 있어 국내 정치·테러 정보를 다루고, 방위성 정보본부(DI)는 군사 정보 수집을 담당한다. 외무성은 외교 루트를 통해 외국 정보를 얻는다.

이처럼 부처별로 정보가 나뉘다 보니 체계적 분석이나 상황 공유가 어렵고, 부처 간 경쟁과 정보 독점이 만연했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연이은 사이버 공격, 북한 미사일 발사 정보 유출 사건 등은 ‘정보통합 실패’의 단면을 드러냈다.

대외 위협과 정보력 격차 내세워 신설 추진

다카이치 정부가 국가정보국 창설을 검토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중국·북한·러시아 등 주변국의 정보공세 강화다. 특히 중국의 사이버전 능력과 북한의 핵·미사일 정보 교란은 일본의 기존 체계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둘째, 동맹국 간 정보격차다. 일본은 미국·영국·호주·캐나다·뉴질랜드로 구성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정보공유체계에 정식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정보 수집력과 보안 수준이 부족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번 국가정보국을 통해 “정보 독립과 국제 신뢰 회복”을 동시에 노린다는 구상이다.

‘일본판 CIA’의 윤곽

새롭게 추진되는 국가정보국은 총리 직속 통합정보센터 성격이 유력하다. 내각정보조사실(CIRO)을 흡수·확대하고, 외무성·방위성·공안조사청의 정보 기능을 한데 모으는 구조가 검토되고 있다.

기능적으로는 ▲대외 정보 수집(HUMINT·SIGINT 강화) ▲국가안보 분석 및 보고 ▲정보공유 및 위협평가 ▲사이버·우주 정보 대응이 핵심이 될 전망이다.

특히 일본의 약점으로 지적된 ‘인간정보(HUMINT)’ 분야를 보완하기 위해, 해외공관과의 연계를 확대하고 독자적 요원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보기관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국회 감독기구와 정보감시위원회를 두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민주주의와 정보권력의 균형”

국가정보국 설립이 현실화되더라도, 일본은 여러 도전에 직면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첫째, 관료 조직 간 갈등이다. 기존 부처들은 정보권한을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부처 간 이익 조정 실패는 새 기관의 출범 자체를 흔들 수 있다.

둘째, 국민적 신뢰 확보다. 정보기관은 감시·통제의 상징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일본 사회의 ‘감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제도 정착은 어렵다. 셋째, 휴민트 역량 확보다. 일본은 전후 첩보 네트워크가 거의 단절돼, 실제 해외 정보원을 운용할 인적 기반이 약하다.

마지막으로, 국제 협력 재설계도 과제다. 일본은 오랫동안 미국의 정보공유망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독립적 분석능력을 확보하면서도 동맹국과의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

‘정보 후진국’ 탈피의 시험대

다카이치 정부의 국가정보국 구상은 단순한 조직 신설이 아니다. 전후 일본이 금기시했던 ‘국가의 정보권력’을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정보력 강화는 단순히 조직의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의 신뢰와 법적 통제, 국제협력의 균형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만약 일본이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전후 80년 만에 ‘정보 후진국’의 오명을 벗고, 명실상부한 글로벌 안보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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