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논단] ‘여자 아베’ 다카이치, 압도적 지지율 힘입어 ‘전쟁 가능한 일본’ 꿈꾸다

취임초 지지율 70%에 '아베 숙원' 평화헌법 개정 노려…방위비 증액·핵잠수함 보유 등 강공 드라이브

취임 일성으로 국방력 증강을 지시한 다카이치 일본 총리. @연합뉴스
취임 일성으로 국방력 증강을 지시한 다카이치 일본 총리. @연합뉴스

[뉴스임팩트=최준영 대기자]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취임과 동시에 일본 정치를 흔들고 있다. 그는 ‘여자 아베’로 불릴 만큼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보다 직선적이고 강경한 보수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취임 초기 여론조사에서 역대 다섯 번째로 높은 70%를 웃도는 높은 지지율을 얻은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발판 삼아 아베조차 완수하지 못했던 평화헌법 개정과 방위력 대폭 강화라는 과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방위비 증액으로 첫 포문 연 다카이치 내각

취임 직후 다카이치 총리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방위정책이었다. 그는 취임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일미 동맹은 일본 외교안보의 기축”이라며 “일본이 방위력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을 세계에 보여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지시로 방위성은 즉각 ‘3대 안보 문서’(국가안보전략, 방위계획대강, 방위력정비계획)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이 문서들은 일본 안보정책의 최상위 지침으로, 이미 기시다 내각 시절 2027회계연도까지 GDP 대비 방위비 2%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더 앞당기거나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일본의 방위비는 GDP의 약 1.8% 수준으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다카이치 내각은 여기에 더해 장사정 미사일 조기 배치, 차세대 동력잠수함(사실상 원자력 잠수함으로 해석됨) 도입, 무기 수출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공격적 방위력’ 확보, 즉 ‘전수방위(공격받을 때만 방어)’ 원칙의 수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관심과 우려를 동시에 불러왔다.

아베의 숙원 ‘헌법 9조 개정’ 이어받다

다카이치 총리의 최종 목표는 방위비 증액을 넘어선 헌법 9조 개정이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원히 포기하며, 육해공군 기타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전쟁 불가능한 국가’로 자리 잡게 만든 평화헌법의 핵심 조항이다.

아베 전 총리는 집권 내내 헌법 9조 개정을 추진했지만, 국민적 반발과 연정 파트너 공명당의 반대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정치적 환경을 바꿨다. 기존 연정 상대였던 공명당 대신, 강경 우파 성향의 일본유신회(日本維新の会)와 손을 잡은 것이다.

자민당과 유신회가 체결한 연정 합의문에는 ‘국난을 돌파해 일본 재기(再起)를 이룬다’는 구호 아래, 3대 안보 문서 조기 개정과 헌법 개정 추진이 명시됐다. 두 당은 12월 임시국회에서 헌법 9조 개정 협의체를 설치하기로 했으며, ‘자위대의 헌법 명기’나 ‘전쟁 가능 국가’로의 전환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검토 중이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첫 외교 시험대

다카이치 총리가 외교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오는 28일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은 그의 첫 외교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증액을 꾸준히 요구해왔고, 다카이치 내각은 이러한 압박을 오히려 자국 방위력 강화 명분으로 삼으려는 계산을 깔고 있다.

그는 회담에서 일본이 “스스로 방위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방위비 추가 증액 계획과 안보문서 개정 방침을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들은 “트럼프가 제시할 ‘방위비 청구서’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움직인 셈”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방위예산은 최근 10년간 2배 이상 올랐지만 다카이치 내각은 추가 증액을 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방위예산은 최근 10년간 2배 이상 올랐지만 다카이치 내각은 추가 증액을 꾀하고 있다. @연합뉴스

높은 국민적 지지에도 헌법개정 여론은 별개

다카이치 총리는 ‘강한 일본’이라는 구호 아래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고 있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진보 언론인 아사히신문은 “원자력 잠수함 도입이나 무기 수출 규제 완화는 평화헌법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전수방위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막대한 방위비 증액이 재정적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일본은 고령화와 복지지출 증가로 이미 재정적자가 심화된 상태인데, 군비 확충은 사회보장 예산 축소로 직결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방위비 증액에 찬성하지만 증세에는 반대’라는 모순된 여론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에서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자민당과 유신회를 합쳐도 현재 의석수는 그 문턱에 미치지 못한다.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하는 절차적 장벽도 높다.

‘아베의 유산’을 완성하려는 강경 보수의 실험

다카이치 내각의 행보는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전후 80년 일본 정치질서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1947년 제정된 평화헌법이 일본의 안보정체성을 규정해왔던 반면, 다카이치 정부는 ‘전쟁 가능한 국가’라는 새로운 틀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녀의 전략은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방위비 증액을 통한 실질적 군사력 강화, 안보문서 개정을 통한 법적·제도적 기반 정비, 헌법 개정을 통한 정치적 완성이 그것이다.

이 세 축은 모두 아베 신조가 남긴 미완의 과제였다. 다카이치는 그 과제를 ‘여성 총리’라는 상징성과 보수층의 결집력을 무기로 완성하려는 것이다.

다만 개헌은 단기간에 실현되기 어렵다. 연정의 불안정성, 국민 여론의 양분, 주변국의 경계 등 변수가 산적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이치 총리는 “평화헌법의 시대를 끝내고 자주국방의 시대를 열겠다”는 신념을 내세우며 일본 정치의 방향타를 강하게 틀고 있다.

그의 집권 초 행보는 일본이 전후 체제를 넘어 ‘보통국가화’를 향해 질주하는 분기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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