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대신 ‘핵관리 시대’로 전환 조짐, 한반도 핵질서와 관련한 근본적 전환점에 선 미국의 현실론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인터뷰에서 “북한은 일종의 핵보유국이다”라며 “그들의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미국 지도자가 처음으로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사실상 시인한 발언으로, 향후 한반도 비핵화 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발언으로 평가된다.
▌ 공허한 비핵화 대신 현실 인정론?
트럼프의 발언은 전통적인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기조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는 “북한은 이미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누구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30년 넘게 지속돼 온 ‘북핵 폐기’ 중심의 외교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적인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일부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 핵보유의 현실을 관리하자는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 신호”로 해석한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CATO연구소는 “미국이 더 이상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기대하기보다는, 핵 확산 방지와 동결 관리로 목표를 수정할 때”라고 지적한 바 있다.
▌ 만약 ‘핵보유국 인정’이 현실화된다면
현재 국제법상으로 핵무기국가는 미국·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등 5개국뿐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1967년 이전에 핵실험을 한 국가만 ‘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 따라서 북한이 법적 의미의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NPT 개정 또는 별도의 국제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존재한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이 그 사례다. 이들 국가는 NPT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국제사회는 실질적인 핵보유 사실을 인정하며 제한적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 역시 이들과 유사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즉, 미국 또는 유엔 차원의 공식 승인 없이도 ‘핵보유 현실’을 전제로 한 협상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트럼프의 언급은 이러한 ‘사실상 인정(fait accompli)’을 향한 첫 정치적 시그널로 볼 수 있다.
▌ 국제사회와 동맹국에 미칠 파장
만약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질서는 근본적 변화를 맞게 된다.
우선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 북한이 공식 핵보유국이 된다면, 두 나라는 “우리도 독자적 핵 억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여론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국은 자국의 영향권 내에서 또 다른 핵보유국이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북핵 인정에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 역시 북핵 관리 체제에서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 미묘한 갈등을 빚을 수 있다.
NPT 역시 신뢰 위기를 맞는다. 한 국가가 조약을 탈퇴하고도 핵무기를 보유한 채 국제사회로 복귀한다면, 다른 비핵국가들이 “핵무장을 통한 생존 전략”을 모방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 ‘핵 인정’의 대가와 조건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과정은 단순한 정치 선언으로 끝나지 않는다. 핵동결 협정, 미사일 실험 제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복귀 등 일정한 조건이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제재 완화와 경제적 보상이 병행될 수 있다. 북한은 그 대가로 핵무기 수량 제한, 핵물질 생산 중단 등을 약속하는 식의 ‘부분적 관리체제’가 형성될 수 있다. 이 경우 한반도는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 억제 균형’이라는 새로운 현실로 접어들게 된다.
▌ ‘관리되는 핵보유국’ 시대의 그림자
문제는 이러한 현실 인정이 새로운 불안정성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공식적으로 핵보유국으로 자리매김하면, 주변국의 핵무장 유인이 커지고, 핵확산 방지체제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또한 북한 내부적으로도 ‘핵무장은 체제 생존의 상징’이라는 논리가 강화되어, 정치적 개방이나 인권개선 등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변화를 더욱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트럼프의 발언은 ‘현실주의 외교’와 ‘핵확산 위험’ 사이의 딜레마를 다시 드러낸 셈이다.
▌ 현실론과 이상론의 충돌
트럼프의 발언은 당장 정책 변화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미국 정치권 내에서 ‘북핵 현실론’을 공식 의제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향후 미국 대선 국면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핵 동결·관리’를 대안으로 제시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이는 곧 한반도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비핵화에서 핵관리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은 이제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는 순간, 동북아 질서의 기본 전제는 완전히 달라지며, 한반도는 비핵화의 이상과 핵균형의 현실 사이에서 새로운 외교적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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