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논단] APEC 정상회의 불참으로 시진핑 독주 판 깔아준 트럼프, 美언론들 지적

‘공급망 안정’·‘자유무역’ 내세운 시진핑, 트럼프의 공백 속에 아시아태평양 주도권 노려

 31일 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 입장하는 시진핑 주석을 이재명 대통령이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 입장하는 시진핑 주석을 이재명 대통령이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구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자주의 수호자 이미지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미중 정상회의를 소화했지만 정작 APEC 정상회의에는 불참해 중국의 외교적 독주를 허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와 대조적으로, 시 주석은 다자무역과 세계화, 녹색 전환을 강조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비운 자리를 채우는 모양새다.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만들자”—시진핑의 다자주의 드라이브

시진핑 주석은 31일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본회의에서 “보편적 특혜가 주어지고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추진하자”며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는 1993년 APEC 제1차 정상회의에서 제시된 ‘아시아태평양 공동체 형성’ 비전을 30년 만에 다시 꺼낸 것으로, 미중 간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새로운 지역 질서의 구심점을 자처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이를 위해 △진정한 다자주의 이행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무역 시스템 강화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과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활용 △공급망 안정 유지 △녹색산업 및 디지털 무역 확대 등 5가지 협력 방향을 제시했다. 이 모든 내용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보호무역·디커플링 기조와 정면으로 대비된다.

트럼프의 공백, 중국의 기회

이번 회의에는 트럼프 대통령 대신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대리 참석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의 불참이 아시아태평양에서 미국의 신뢰를 떨어뜨렸고,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를 잡게 했다고 꼬집었다. AP통신은 “트럼프의 빈자리가 시진핑에게 외교적 무대를 열어줬다”고 논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했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탈퇴했고, 이후 일방적인 관세 인상과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며 ‘미국 우선주의’를 강화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국은 다자무역 체제의 신뢰를 잃었고, 중국은 그 공백을 파고들었다는 평가다.

이번 APEC 정상회의 직전, 미중 양국은 관세와 수출 통제 완화를 포함한 1년짜리 ‘휴전 합의’를 발표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조기 귀국한 반면, 시 주석은 회의에 남아 각국 정상들과 교류를 이어가며 중국 중심의 경제 협력 구도를 강조하는 등 대조적인 행보를 보였다.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시진핑 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총리. @연합뉴스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시진핑 주석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총리. @연합뉴스

“공급망 끊지 말고 연장하자”—중국식 세계화 강조

시진핑 주석은 연설에서 “세계가 100년 만의 대변화 속에 있다”며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을수록 한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급망 안정’을 핵심 화두로 제시하면서 “각국이 서로의 연결을 끊는 것이 아니라 연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 미국이 추진 중인 ‘디커플링(탈중국)’ 정책에 대한 명백한 견제다.

특히 시 주석은 “녹색산업, 청정에너지, 디지털 무역에서 협력을 확대하자”며 중국이 주도하는 ‘녹색 글로벌화’ 모델을 제안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부터 ‘녹색 사기(Green Scam)’라는 표현으로 친환경 산업을 비판해 왔다. 두 지도자의 철학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다자주의 깃발 아래—중국의 ‘글로벌 리더십’ 실험

중국은 이미 올해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내놓았고, 베이징 전승절 열병식에서는 북중러 연대를 과시하며 ‘반(反)서방 다자주의’ 구도를 강화했다. 여기에 APEC까지 더해지며 시진핑은 ‘다자주의 수호자’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대외 개방을 기본 국책으로 삼고 있다”며 “제15차 5개년 계획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진하고, 중국식 현대화의 성취를 아시아태평양과 세계에 새로운 기회로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국 내수 시장을 ‘시장 개방’ 명분으로 외교적 카드로 활용하며, 중국에 우호적인 국가에만 경제 참여 기회를 주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내년 APEC은 중국”—다자무대 주도권 굳히기

내년 APEC 정상회의가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베이징이 아시아태평양 다자무대의 주도권을 굳힐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가 낳은 외교적 공백 속에서, 시진핑은 ‘공급망 협력’과 ‘공동 번영’이라는 미명 아래 중국 중심의 경제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번 APEC 회의는 트럼프의 불참이 만들어준 ‘정치적 무대’ 위에서 시진핑이 다자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독주를 시작한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이 자국 중심의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사이, 중국은 아시아태평양의 ‘질서 설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주요 미국언론들은 꼬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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