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이어온 자민당 파벌의 역사, 보수 재결집과 권력 균형의 변화 예고
[뉴스임팩트=최준영 대기자] 일본의 정치권, 특히 자민당을 이해하려면 ‘파벌’ 구조를 빼놓을 수 없다. 자민당은 1955년 보수 양당이 합당해 탄생한 이후, 일본 정치를 사실상 장악해왔다. 그러나 그 내부는 단일한 권력체가 아닌, 여러 파벌이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는 복잡한 권력 네트워크로 구성돼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곧 파벌 간의 세력 균형을 가늠하는 축소판이다. 이번에 당선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는 ‘여자 아베’로 불릴 만큼 강경보수 성향과 친(親)아베계 노선을 대표하며, 이러한 자민당 파벌정치의 최신 구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파벌정치의 기원–1955년 체제의 산물
자민당 파벌은 1955년 체제에서 비롯됐다. 보수진영의 두 정당,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면서 내부 권력 분배를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그 시작이다. 각 파벌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국회의원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를 기반으로 자금, 인사, 공천, 정책 결정 등 당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1960~80년대는 파벌정치의 전성기였다. 다나카 가쿠에이, 후쿠다 다케오, 오히라 마사요시 등 거물 정치인들이 파벌을 이끌며 ‘자민당=파벌의 연합정권’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당시에는 자민당 총재(즉, 총리)가 되기 위해 각 파벌의 지지를 받는 것이 절대적 조건이었고, 내각 인사와 예산 배분 또한 파벌 간 거래의 산물이 되었다.
▌ 파벌의 쇠퇴와 부활
1990년대 들어 정치개혁이 추진되면서 자민당의 파벌정치는 일시적으로 약화됐다. 금권정치 비판, 정치자금 규제, 소선거구제 도입 등으로 인해 파벌 운영의 재정적 기반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1993년 자민당이 일시적으로 정권을 잃은 이후, ‘파벌 없는 정치’를 주장하는 개혁파들이 부상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파벌은 형태를 바꿔 부활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파벌에 의존하지 않는 리더십’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는 파벌 간의 균형 속에서 권력을 유지했다. 이후 아베 신조가 집권하면서 파벌의 중요성은 다시 강화됐다. 아베는 자신이 속한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政策研究会, 통칭 아베파)를 중심으로 충성도 높은 인사들을 중용하며, 파벌을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다.
▌ 현재의 주요 파벌 구도
2025년 현재 자민당 내에는 여전히 여러 주요 파벌이 존재하며, 총재 선거와 내각 구성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파벌은 다음과 같다.
최대 파벌은 세이와정책연구회(清和会, 구 아베파)다. 약 90명 규모로 자민당 최대 파벌이었다. 아베 신조 사망 이후 다카이치 사나에, 하기우다 고이치 등이 중심이 되어 재편 중이다. 친미·보수·국방강화 노선을 유지하며, 전통적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다.
헤이세이연구회(平成研究会, 구 다케시타파)는 약 50명 규모이며, 친기업 성향이 강하고, 실용적·경제중심의 정책을 추구한다. 파벌 운영은 다소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재정적 영향력이 크다.
시스이카이(志帥会, 모테기파)는 약 40명 규모이며,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이 이끌며, 최근에는 당내 실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교·경제 정책에 강점을 가지며, 차기 주자 그룹으로 평가된다.
기쇼카이(岸田파)는 약 45명 규모로,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가 속해 있다. 온건 중도 성향을 지니며 외교적 유연성을 강조하지만, 최근 파벌 해체 선언 이후 실질적 영향력은 축소되었다.
시코카이(茂木파) 및 무파벌 그룹은 젊은 세대 의원들을 중심으로 무파벌 흐름이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여성 의원들과 지방 출신 의원들이 새로운 권력 균형을 형성하고 있다.
▌ 다카이치 부상과 ‘여자 아베’의 의미
다카이치 사나에는 1961년 나라현 출신으로, 자민당 내에서도 보기 드문 강경보수 정치인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적 후계자로 불리며, 외교·안보에서 강력한 보수 노선을 유지한다. 헌법 9조 개정, 자위대의 정규군화, 방위비 GDP 2% 이상 확대, 대중(對中) 견제 강화 등을 주장해왔다.
그녀의 총재 당선은 단순히 여성 총리의 가능성 이상을 의미한다. 아베파의 정치적 부활, 그리고 자민당 내 보수세력의 재결집이 본격화됐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카이치는 총재 선거 과정에서 모테기파와 일부 무파벌 의원들의 지지를 확보하며, ‘보수 대연합’을 이뤄냈다. 이는 자민당이 다시금 이념적 색채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 ‘강한 일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 파벌정치의 미래
다카이치의 당선으로 자민당은 보수 일색의 권력구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파벌 간 균형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아베파의 명맥이 부활한 반면, 기시다파 등 온건 세력은 세력 재편을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시대의 자민당이 다시금 ‘파벌 중심 정치’로 회귀할 가능성을 높게 본다. 이는 내각 구성이나 예산 배분에서 파벌 간 협상과 인사 거래가 재개될 수 있음을 뜻한다.
자민당의 파벌은 일본 정치의 불가피한 구조이자, 권력의 실질적 매개체로 남을 것이다. 다카이치 사나에의 부상은 단순히 한 여성 정치인의 승리가 아니라, 자민당 보수파와 파벌정치가 다시 주류로 복귀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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