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회담’ 부활 노리는 트럼프, 외교보다 정치적 상징성에 초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달말 아시아 순방 중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18일(현지시간) CNN을 통해 전해졌다. 미 행정부 내에서 비공식 논의가 오가고 있으나, 아직 평양과의 직접적인 접촉이나 구체적 일정 조율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북한과의 정상회담 재개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왜 다시 김정은과의 만남에 집착할까.
▌ 정치적 상징 자산으로서의 ‘북미 정상회담’
트럼프가 2018년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세기의 회담”을 성사시킨 미국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냉전 이후 단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던 현직 미국 대통령과 북한 최고지도자의 만남은 트럼프 외교의 상징이자 그가 자랑하는 ‘딜 메이커’ 이미지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관계는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트럼프는 이번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두 번째 정상외교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외교 성과가 아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만남을 통해 중동평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노력에 이어 남북이 대치 중인 한반도에서의 자신의 외교 리더십을 다시 한 번 과시하고, 과거 실패했던 핵협상 국면을 ‘재시작’함으로써 정치적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 국내 여론용 ‘외교 이벤트’
현재 트럼프는 2기 집행부 출범 이후 중대한 분수령에 서 있다. 미중 무역전쟁, 유럽과의 관세 분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주도권을 ‘파격적 외교 이벤트’로 되찾으려 한다. 김정은과의 회담 추진은 그 대표적 카드가 될 수 있다.
트럼프는 과거에도 외교적 돌파구를 정치적으로 활용해왔다. 2019년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악수하며 군사분계선을 넘은 장면은 그의 트위터와 유세 무대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이는 국내 보수층뿐 아니라 ‘강한 미국’을 원하는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김정은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재활성화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북핵 문제 자체 보다는 ‘이미지 정치’
그러나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이번 행보가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과는 무관하다고 지적한다. CNN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 트럼프 측의 비공식 접촉 제안은 북한에 의해 거절됐다. 이는 북한이 트럼프의 정치적 의도를 간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북한과의 ‘관계 유지’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자신을 ‘위기관리형 지도자’로 포장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외교보다 ‘이미지’에 초점을 둔 정치적 계산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도 트럼프는 김정은을 ‘똑똑하고 훌륭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우며 개인적 관계를 강조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외교적 합의보다 ‘쇼맨십’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 동북아 구도 속 미국의 존재감 회복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는 한미일 3각 공조가 재정비되는 상황 속에서, 북미 접촉이 미·중 경쟁 구도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트럼프는 8월 이재명 대통령과의 워싱턴 회담 후 “한반도 문제에서 미국이 다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김정은과의 만남을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시동’을 걸고, 이를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외교적 명분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성과 없이 ‘정치 이벤트’로만 끝날 경우, 미국의 신뢰도는 오히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외교의 쇼맨십’이 낳은 반복되는 회동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만남에 집착하는 이유는 결국 정치적 상징성에 있다. 그는 외교를 실질적 성과를 위한 협상의 장이라기보다 자신의 치적을 과시하는 ‘무대’로 보고 있으며, 김정은은 그 무대 위에서 가장 효과적인 상대다. 대화가 결실을 맺지 않더라도, 회담 자체가 만들어내는 ‘그림’이 트럼프에게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그림 외교’의 한계는 이미 하노이에서 드러났다. 트럼프가 진정한 외교적 성과를 원한다면, 김정은과의 만남이 아닌 실질적 신뢰 구축과 정책적 일관성이 먼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집착’은 또 한 번의 정치적 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