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드론 위협 속 발트3국 ‘드론 벽’ 구상 본격화
정치적 지연·비용·작전권한 등으로 현실화 불투명
[뉴스임팩트=최준영 대기자] 러시아가 수십차례 드론을 날려 폴란드 국경을 침범한 가운데 폴란드, 핀란드, 발트 3국이 러시아발 드론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 중인 이른바 ‘드론 벽(Drone Wall)’ 구상이 국제 방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에스토니아 방산 클러스터가 올해 초 제안한 이 프로젝트는 수백 킬로미터에 걸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부 국경을 다층 방어체계로 묶어내려는 시도다. 목표는 단순하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이미 검증된 각종 무인기 탐지·요격 시스템을 통합해 국경을 넘어오는 적 드론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야심찬 청사진과 달리, 드론 벽은 아직 개념적 단계에 머물러 있어 현실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당초 완공 예상 시점은 2027년으로 잡혀 있지만, 에스토니아는 “너무 늦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최근 러시아 드론이 우크라이나 공격 과정에서 나토 국가 영공을 빈번히 침범하면서, 안보 위협이 ‘현재진행형’이라는 현실적 공포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드론 벽의 개념=드론 벽은 음향 센서, 모바일 카메라, 레이다, 인터셉터 등으로 구성된 다층 방어 시스템(Layered Defense System)으로 설계된다.
● 음향 센서 : 저고도에서 비행하는 드론의 소음을 탐지
● 모바일 카메라·EO/IR 센서 : 광학적 추적 및 위협 식별
● 레이다·재머(Jammer) : 중·고도 드론 탐지 및 통신 교란
● 인터셉터(Interceptor)·에펙터(Effectors) : 직접 파괴 임무 수행
이 모든 데이터를 중앙 통합 지휘체계에 실시간으로 연동, 나토 동부 전선 전역에서 동일한 위협 상황 인식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에스토니아의 마르둑 테크놀로지가 개발 중인 ‘마르둑 샤크(Marduk Shark)’ 전자광학 무인기 요격체계가 대표적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시험 운용을 거쳐 탐지·식별 능력을 입증했다는 평가다.
◇현실화의 난관=드론 벽이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실제 체계로 구현되려면 세 가지 난제가 존재한다.
첫째, 정치적 지연이다. 프로젝트가 다국적 협력 구조로 짜여 있다 보니, 예산 분담과 책임 주체 설정에서 진전이 더디다. 발트 3국과 폴란드가 모두 러시아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방산 투자 우선순위와 국내 정치적 상황이 엇갈리면서 신속한 실행력이 떨어진다.
둘째, 기술적 통합 문제다. 레이더, EO 센서, 재머, 요격기 등은 이미 각국에서 생산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수만 개에 달하는 센서를 국경 전역에 설치하고, 이를 나토 지휘체계와 실시간 연동하는 것은 정보 공유·데이터 통합의 난제를 낳는다.
셋째, 작전적 책임 소재다. 예컨대 300m 상공을 침범한 드론이 포착될 경우, 해당 임무가 공군의 방공 작전인지 육군의 대드론 대응인지 불분명하다. 이처럼 다층 방어망의 요격 권한 배분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으면 대응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전문가 평가=미국 군사 매체 디펜스 뉴스는 “드론 벽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나토 국경선 방어에 직접 적용한 최초의 시도”라며 “기술적으로는 실현 가능하지만,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단지 ‘시뮬레이션’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는 “발트 3국이 직면한 드론 위협은 단순한 군사 문제가 아니라, 나토 집단방위 체계 전체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수천 개 센서를 활용한 정보융합은 나토의 C4ISR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릴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의 디 벨트는 보다 회의적인 시각을 내놓았다. “국경 전역을 24시간 감시하는 센서망을 구축한다는 발상은 매력적이지만, 이는 사실상 ‘하늘의 만리장성’을 쌓겠다는 구상에 가깝다”며 막대한 유지·운영 비용 문제를 강조했다.
◇전망과 과제=드론 벽은 러시아의 ‘저가·대량 드론 전술’에 대한 서방의 집단 대응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EU(유럽연합)가 우크라이나와 함께 ‘드론 동맹(Drone Alliance)’을 출범시키면서, 유럽판 공동 방공망 구상으로 확장될 여지도 보인다.
다만, 정치적 결단·예산 투입·작전 권한 정립이 지연된다면, 2027년 완공 목표는 공허한 약속이 될 수 있다. 에스토니아 업체들이 주장하듯 “내년 여름까지 가동돼야 실질적 효과를 발휘한다”는 주장이 현실성을 갖추려면, 나토 차원의 전략적 우선순위 조정이 불가피하다.
즉, 드론 벽은 기술적으로는 ‘가능’, 그러나 정치·재정·군사 운용 구조 측면에서는 여전히 ‘불확실’한 과제다. 발트해 연안 국가들의 실험이 유럽 전체의 대드론 방어 전략으로 확산될지 여부가 향후 2~3년간 나토 안보 지형을 가늠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