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광물 패권’ 놓고 미·중·러 3국 각축…AI·방산산업의 심장, 희토류 공급망이 세계 전략질서의 새 축으로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21세기 자원전쟁의 중심이 ‘석유’에서 ‘희토류’로 이동하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뒤늦게 희토류 개발전쟁에 뛰어들었다.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스마트기기, 미사일과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현대 산업의 동맥을 구성하는 희토류 자석이 세계 패권 경쟁의 핵심 무기로 떠오른 가운데 최근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통제하면서, 미국과 러시아가 자국 내 공급망 확보를 위한 전면전에 돌입한 것이다.
▌ 푸틴의 ‘희토류 독립’ 명령
4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내각에 “다음 달 1일까지 희토류 광물 채굴 계획을 수립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크렘린궁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단순한 자원 개발이 아니라 중국·북한과의 국경 물류망 확대 전략과 연동돼 있다.
푸틴은 특히 극동연방지구 내 복합운송 물류센터 개발을 명령하며 “2026년까지 가동 가능한 기반시설을 구축하라”고 못박았다. 이는 아무르강과 두만강을 잇는 철교 및 신규 교량 정비, 항만 확충 등을 포함한다. 러시아가 서방 제재 속에서 중국 및 북한과의 경제 연결망을 강화하고, 희토류 자원을 전략적 협력의 축으로 삼겠다는 의도다.
모스크바 경제연구소의 세르게이 안드레예프 연구위원은 “러시아는 군수산업의 핵심인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확보를 통해 제재 체제 하에서도 자립 가능한 방위경제 구조를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 정부는 현재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에서 최소 12곳의 희토류 탐사 프로젝트를 승인했지만, 본격 상용화까지는 약 8~1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즉, 실질적인 생산은 일러야 2031년, 늦으면 2035년에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미국, 2조원대 희토류 자석 프로젝트 착수
반면 미국은 ‘공급망 완전 자립’을 목표로 한 대규모 희토류 자석 산업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의 스타트업 불칸 엘리먼츠와 리엘리먼트 테크놀로지는 미 국방부·상무부와 총 14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 협약에 따라 불칸은 연간 1만 톤 규모의 희토류 자석 생산시설을 신설하고, 리엘리먼트는 재활용·정제 기술 확충을 담당한다. 자금은 국방부의 6억2000만 달러 직접 대출, 상무부의 반도체칩법(Chips Act) 보조금 5000만 달러, 민간 자본 5억5000만 달러 등으로 조달된다.
특이할 점은 미 정부가 기업 지분을 직접 인수했다는 점이다. 국방부는 두 회사의 워런트(신주인수권)을 확보했고, 상무부는 불칸의 지분 5000만 달러어치를 인수했다. 이는 단순한 산업 지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통제 산업 전략을 의미한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성명에서 “이번 투자는 미국 제조업체를 위한 희토류 자석의 완전한 국내 생산 체계 복원을 가속할 것”이라며 “희토류 제조를 미국 영토로 되돌리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이 프로젝트의 상용화 시점을 2029~2031년으로 잡고 있으며, 2030년 이후 자국 내 생산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 ‘희토류 전쟁’의 본질—기술·방산 주도권 경쟁
희토류 자석은 AI 서버 냉각 팬, 전기차 모터, 스마트폰 진동 장치뿐 아니라 미사일 유도장치·레이더·전투기 엔진·항공모함 추진체계에도 필수적으로 쓰인다. 공급망 차질은 곧 산업과 군사력의 약화로 직결된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정제 능력의 90% 가량을 차지하며, 사실상 시장을 독점 지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중 갈등이 심화될 때마다 “희토류 무기화” 우려가 반복된다. 2023년 중국이 갈륨·게르마늄 등 반도체용 희소금속의 수출을 제한했을 때, 미국은 희토류 자급체계 구축을 국가안보 의제로 격상시켰다.
이번 불칸-리엘리먼트 프로젝트는 중국의 공급 통제에 대한 첫 실질적 대응책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이미 2024년 7월, 국내 최대 희토류 광산업체 MP 머티리얼스의 지분 15%를 국방부가 직접 인수해 산업 통제권을 확보한 바 있다.
▌ 러시아·중국·북한, ‘자원 벨트’ 구상
한편 러시아는 독자적인 개발 노력과 별개로, 중국과의 ‘자원 동맹’을 강화하며, 극동 지역을 유라시아 희토류 수송축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아무르강-두만강을 잇는 물류망은 단순한 교통망이 아니라, 러시아-중국-북한을 연결하는 ‘희토류 자원 벨트’로 기능할 수 있다.
중국이 자국 내 생산을 통제하는 한편, 러시아가 극동 매장 자원을 개발하고 북한이 중간 재가공지로 활용된다면, ‘반미 희토류 연합 벨트’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국영통신 리아노보스티는 “푸틴의 지시는 극동개발 정책의 새로운 단계로, 아시아 공급망의 중심을 유라시아로 이동시키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