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PEC 정상회의, 미중 경제전쟁의 새 분수령 될 듯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협상 주요 의제로 ‘대두’를 지목하면서, 미중 갈등이 새로운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앞서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통해 미국의 AI 반도체 제재를 완화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는 트럼프의 최대 지지층인 농민들의 밥줄인 대두 수입 중단을 통해 미국의 정치·경제적 급소를 찌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중국, ‘안 팔아' 전략에서 ‘안 사' 전략으로
싱가포르 연합조보는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엔 ‘사지 않는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4일 보도했다. 앞서 중국은 지난 4월 희토류 17종 중 7종의 대미 수출을 통제하며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용 H20 칩 수출 허가를 이끌어냈다. 희토류가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임을 감안하면, 중국의 이 조치는 ‘자원 무기화’ 전략의 성공적 사례로 평가된다.
1992년 덩샤오핑이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중국은 희토류를 외교적 협상 카드로 적극 활용해왔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미국의 농산물, 특히 중서부 농민의 생계와 직결된 대두를 정면 겨냥했다.
▌ 대두, 미국 농심(農心)을 흔드는 새로운 무기
중국은 대두 자급률을 높인 것이 아니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로부터의 수입을 대폭 늘리며 미국산 대두 수입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는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중 무역전쟁 당시의 교훈을 되살린 조치다. 당시 중국은 미국산 대두 대신 남미산 대두를 수입하며 농산물 의존도를 조정했고, 이번에도 같은 전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미중 무역전의 장기화를 예상하고 식량·자원 안보 측면에서 철저히 대비해왔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대두 분쟁은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미국 농민에게 직접적 타격을 주며 내년 중간선거의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글로벌사우스와 손잡은 중국의 외교전
중국은 단순히 미국을 견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브라질·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 등 이른바 글로벌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의 경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대두 수입 대체뿐 아니라 원자재·식량·에너지 전반에서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장기 전략의 일환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남반구 신흥국과의 협력을 통해 ‘비(非)서방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는 미국 중심의 무역체제를 약화시키는 실질적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 다급해진 트럼프의 ‘대두 협상 카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4주 후 시진핑 주석과 만날 것이며, 대두는 대화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두와 다른 작물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를 덧붙이며, 농민층의 불만을 달래는 발언을 내놨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발언은 협상용 수사에 가깝고, 실제 협상 테이블에서는 대만 문제 등 보다 근본적인 외교안보 현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국 역시 단순한 농산물 거래 이상의 ‘정치적 확답’을 원하고 있다. 특히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는 명시적 표현을 미국이 천명하기를 바란다는 해석이 나온다.
▌ 희토류와 대두, 두 개의 무역전선
결국 미중 갈등은 ‘팔지 않는 희토류’와 ‘사지 않는 대두’라는 두 개의 무역전선으로 확장되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를 통해 기술·산업 공급망을, 대두를 통해 정치·농업 기반을 흔드는 ‘이중 압박’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미국은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향후 관세 조정, 보조금 확대, 전략비축자원 동원 등 다층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국의 공급망 다변화가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만큼, 미국의 전통적 무역 압박이 과거만큼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경주 APEC 정상회의가 분수령
이달 말 한국 경주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이번 대두·희토류 분쟁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농민층을 달래기 위한 ‘상징적 양보안’을 내놓을지, 혹은 대만 문제 등 핵심 현안에서 새로운 합의를 시도할지가 주목된다.
따라서 미중 갈등은 단순한 무역 문제가 아닌, 식량과 자원, 기술과 안보를 둘러싼 ‘총체적 패권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희토류와 대두, 이 두 개의 카드가 향후 세계 경제 질서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 [심층분석] 중국은 어떻게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희토류' 패권국이 되었나
- [심층분석] 트럼프도 떨게 만드는 금속 원소, 중국은 어쩌다 희토류 최강국이 되었나
- [심층분석] F-35도 희토류 없으면 생산 불가…中 수출규제, 美 군사력 정조준
- [Why] 트럼프 1기 때와 전혀 달라진 중국의 배짱, 전략적 자신감의 근거는
- [긴급진단] 미·중 희토류 전쟁, 한국은 2023년부터 물량 비축 미리 대비
- [미중 무역전쟁] 오락가락 트럼프, 최악의 경우 중국과 ‘헤어질 결심’…경제 냉전 서막
- APEC 미중 정상회담 앞두고 '기싸움' 최고조, 中 희토류 카드 재차 압박
- [심층분석] 30일 미중 정상회담, ‘빅딜’ 혹은 ‘스몰딜’…트럼프-시진핑 6년만 대좌
- [심층분석] 中 수출통제가 불붙인 미·러 희토류 개발전쟁…실제 개발엔 5~10년 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