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첩보세계] 첩보의 탄생 - 고대에서 냉전까지

손자병법에서 CIA 탄생까지, 스파이의 뿌리

스파이의 전설 마타하리를 다룬 1931년작 영화 마타하리. 그레타 가르보가 마타하리 역을 맡았다. @연합뉴스
스파이의 전설 마타하리를 다룬 1931년작 영화 마타하리. 그레타 가르보가 마타하리 역을 맡았다. @연합뉴스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단순히 무력 충돌만이 아니었다. 총과 대포, 창과 방패 뒤에는 늘 보이지 않는 전쟁, 바로 ‘첩보전’이 존재했다. 상대의 동향을 파악하고 의도를 예측하는 능력은 고대부터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였다. 첩보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것은 곧 인류 권력 투쟁의 또 다른 그림자였다고 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첩보는 이미 중요한 군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의 병법서 '손자병법'은 “간첩은 전쟁에서 가장 귀중한 존재”라고 강조한다. 손자는 첩자를 다섯 종류로 나누어 설명했는데, 이는 적 내부를 교란하고 상황을 장악하는 전략적 도구로서 첩보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한 증거다. 로마 제국 역시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첩자를 체계적으로 활용했다. 국경 지대에는 ‘프루멘타리이(frumentarii)’라 불리는 정보 담당자가 배치되어 주변 민족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동양에서도 첩보는 국가 생존과 직결됐다. 조선은 여진족과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탐라첩자’, ‘북방 첩자’를 운영하며 정보망을 구축했다.

근대 유럽은 첩보 활동의 국제적 무대를 확대시켰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 열강은 식민지 확보 경쟁 속에서 상대국의 군사력, 외교 전략을 탐지하기 위해 비밀리에 첩자를 파견했다. 외교관과 상인, 언론인으로 위장한 첩보원들이 활동했으며, 이때부터 첩보는 단순한 군사 영역을 넘어 정치·경제적 의미까지 확장됐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 첩보의 주요 수단은 여전히 인간의 눈과 귀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쟁 양상이 총체적으로 바뀌자, 첩보도 기술적 혁신을 맞이했다. 제1차 세계대전은 본격적인 ‘현대 첩보전’의 서막이었다. 무선통신의 도입으로 각국은 암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곧 암호 해독 전쟁이 뒤따랐다. 독일은 정교한 암호 체계를 구축했으나, 연합국은 이를 집요하게 해독해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이 시기 암호전의 대표적 사건이 바로 ‘짐머만 전보 사건’이다. 독일이 멕시코와 미국을 견제하려 했던 외교 전보가 영국에 의해 해독되면서, 미국은 결국 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암호 해독 한 건이 전쟁사의 흐름을 뒤바꾼 셈이다.

암호해독의 전설 앨런 튜링. 수학자인 그는 2차 세계대전 독일 잠수함 암호기 에니그마를 해독한 인물로 유명하다. @연합뉴스
암호해독의 전설 앨런 튜링. 수학자인 그는 2차 세계대전 독일 잠수함 암호기 에니그마를 해독한 인물로 유명하다. @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은 첩보전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다. 독일은 ‘에니그마’ 암호기를 통해 군사 통신을 보호했지만, 영국 블레츨리파크의 수학자 앨런 튜링과 그의 팀은 ‘울트라 프로젝트’를 통해 해독에 성공했다. 이 정보는 연합군이 독일 잠수함 작전을 무력화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첩보는 단순한 지원 수단이 아니라, 전쟁의 판세를 결정하는 핵심 무기가 된 것이다.

전쟁 말기, 첩보의 무대는 이미 지상과 해상을 넘어 하늘과 우주로 확장됐다. 미국은 U-2 정찰기를 개발해 고고도에서 소련을 촬영했고, 이후 인공위성까지 투입되면서 첩보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의 양극 체제로 재편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미국의 CIA(1947년 설립)와 소련의 KGB(1954년 설립)였다. 냉전의 서막과 함께, 첩보는 국가 전략의 최전선으로 올라섰다. CIA와 KGB는 단순히 군사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군대’였다.

첩보의 역사는 곧 권력의 역사였다. 고대의 밀정, 제국의 첩자, 세계대전의 암호전, 그리고 냉전기의 첩보전까지, 인류는 언제나 총과 칼 뒤에서 ‘정보’라는 무기를 휘둘러왔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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