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히만 체포부터 뮌헨올림픽 테러범 사살, 사이버전까지…생존을 위해 진화한 이스라엘의 창과 방패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이스라엘의 국가정보기관 모사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두려움과 존경을 동시에 받는 이름 중 하나다. 1949년 창설된 모사드는 작은 국가 이스라엘이 적대적인 중동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패이자 창이었다. 모사드의 존재는 단순한 첩보 활동을 넘어,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 임무였다.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부터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에 직면했고, 국토는 좁고 인구는 적었다. 이런 환경에서 모사드는 제한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대칭적 전략을 펼쳤다. 즉, 전면전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은밀한 첩보와 선제적 제거 작전을 통해 국가 안보를 지켜야 했다. 모사드는 그 특수한 상황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정보기관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모사드의 대표적 작전으로는 196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체포한 사건이 꼽힌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을 기획한 핵심 인물이었으며, 전후 남미로 도주해 은신하고 있었다. 모사드 요원들은 장기간 잠복 끝에 아이히만을 납치해 이스라엘로 압송했고, 그는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작전은 모사드를 세계 무대에 각인시킨 상징적 사건이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이스라엘 선수단을 공격해 11명이 희생된 사건은 모사드의 성격을 더욱 극명히 보여주었다. 당시 이스라엘 정부는 모사드에 “검은 9월” 조직원 전원을 추적·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모사드는 유럽과 중동 전역에서 관련 인사들을 암살하거나 체포했으며, 이 복수 작전은 수년에 걸쳐 이어졌다. 이 과정은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뮌헨'(2005)과 다큐멘터리로 재현되며 전 세계인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 다른 모사드의 대표적 능력은 해외 공작망이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 모사드는 이 네트워크를 활용해 현지 정보 수집망을 구축하고, 필요할 경우 요원을 잠입시키는 방식으로 작전을 진행했다. 작은 국가가 글로벌 규모의 정보력을 갖출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전세계적 연대가 있었다.
모사드는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데도 앞서 있다. 아랍 국가들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사이버 공격과 파괴 공작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이란의 핵 시설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은 국제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이버전과 드론, 인공지능 같은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사드의 방식은 정보기관의 미래상을 미리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모사드의 활동은 늘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국제법 위반 논란과 외교적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97년 요르단 암만에서 하마스 지도자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은 큰 외교적 위기를 낳기도 했다. 이처럼 모사드의 공격적 작전은 높은 위험을 동반하며, 때로는 이스라엘 외교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사드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전설적인 정보기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들은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수준을 넘어, 전략적 암살과 심리전, 사이버전까지 수행하며 이스라엘 안보의 최전선에 서 있다. 모사드의 존재는 작은 나라가 생존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그림자 속 전쟁을 벌여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