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 직전 설립돼 100년 넘는 역사와 전통으로 진화한 글로벌 정보전의 핵심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기자] 영국 비밀정보국은 흔히 MI6(Secret Intelligence Service, SIS)라 불린다. 이 조직은 세계 첩보사의 전설적 존재다. 냉전기 CIA와 KGB가 맞붙기 전부터 MI6는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며 제국주의 시대의 이익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었다. 오랜 전통과 독창적인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영제국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MI6를 국제 첩보전의 핵심 주자로 남게 만들었다.
MI6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09년, 독일 제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됐다. 당시 영국은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고 있었고, 해외 식민지와 항로를 보호하는 일이 국가 생존과 직결됐다. MI6는 초기부터 해외 정보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며, 영국 본토를 지키는 MI5와 역할을 분담했다. 그들의 존재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오랫동안 대중에게조차 실체가 알려지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은 MI6의 이름을 각인시킨 결정적 무대였다. 독일과 일본의 군사정보를 수집하고, 레지스탕스와 협력해 점령지 내에서 활동하며, 연합군 승리에 기여한 수많은 공작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특히 암호 해독 기관 블렛츨리 파크와의 협력은 전쟁의 향방을 바꿔놓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영국이 독일의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던 것도 MI6의 정보망과 과학자들의 협업 덕분이었다.
냉전은 MI6를 또 다른 전성기로 이끌었다. 소련과 동구권은 영국 안보에 가장 큰 위협으로 떠올랐고, MI6는 미국 CIA와 함께 서방 진영의 최전선에서 KGB와 치열한 첩보전을 벌였다. 이 시기 케임브리지 스파이단 같은 사건은 MI6의 약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구 정보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 CIA와 MI6의 긴밀한 협력은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지며, 오늘날에도 ‘특별한 관계’로 불린다.
영국 대중에게 MI6는 한동안 실체 없는 신화였다. 그러나 소설가 이언 플레밍이 창조한 가상의 요원 제임스 본드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MI6는 곧 대중문화 속에서 ‘화려한 스파이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실제 MI6는 영화와는 달리 철저한 은밀성과 분석 능력을 강조했지만, 본드 시리즈는 이 기관의 이미지를 세계적으로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냉전 종식 이후 MI6는 새로운 적을 맞닥뜨렸다. 테러리즘, 국제 마약 밀매, 무기 확산, 사이버 위협 등 전통적 군사 정보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9·11 테러 이후 MI6는 알카에다와 같은 국제 테러조직을 추적하며, 미국 및 유럽 정보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MI6는 과거의 제국 방위 임무를 넘어, 글로벌 안보 보장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MI6는 첨단 기술과 사이버 공간을 새로운 전장으로 삼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데이터 분석, 위성 감시, 사이버 방어는 MI6의 핵심 임무로 자리 잡았다. 과거처럼 현장 요원의 은밀한 활동이 중요하긴 하지만, 오늘날의 MI6는 그만큼 디지털 정보전에도 막대한 자원을 투자한다.
또한 MI6는 과거와 달리 일정 부분 존재를 공개하고 있다. 런던 템스강변의 본부 건물은 이제 비밀이 아닌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수장들은 공개적으로 연설하며 영국의 안보 전략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전통적인 은폐 전략에서 벗어나, 대중과 정치권의 신뢰를 확보하려는 변화의 일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I6의 본질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서 활동하는 ‘보이지 않는 전사’들이다. 세계 곳곳의 분쟁지에서, 혹은 외교 현장에서 MI6 요원들은 여전히 영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MI6는 제국의 유산을 이어받아, 오늘날 글로벌 안보의 무대에서 현대적으로 변신한 강력한 정보기관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