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일기로 사망한 북한 외교의 상징, 3대 권력의 ‘외교 창구’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북한의 대표적 외교 관료로 불리던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3일 9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우리 당과 국가의 강화 발전사에 특출한 공적을 남긴 노세대 혁명가 김영남 동지가 암성 중독에 의한 다장기 부전으로 고귀한 생을 마쳤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벽 1시 주요 간부들과 함께 평양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는 김영남이 북한 내부에서 ‘혁명 원로’로서 여전히 높은 예우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 모스크바 유학에서 출발한 ‘외교 엘리트’
1928년 일제강점기 시절 출생한 김영남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모스크바 유학을 다녀온 대표적 엘리트 관료였다. 귀국 후에는 중앙당학교(현 김일성고급당학교) 교수로 일했으며, 곧 노동당 국제부에 발탁되어 본격적인 외교 관료의 길을 걸었다.
1983년부터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현 외무상)을 맡으며 북한 외교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후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 지도자 아래에서 한 번도 좌천되지 않고 주요 외교직을 유지했다는 점은 북한 내부에서도 드문 사례로 꼽힌다.
▌ ‘대외 정상 외교의 얼굴’로 21년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1998년, 김영남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대외적으로 북한 국가수반의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김정일은 대외활동을 기피했기 때문에, 김영남이 각국 정상과의 회담·조문·축전 등 모든 정상 외교를 사실상 전담했다.
그는 온건하고 원칙적인 화법으로 외신들 사이에서도 ‘북한 외교의 얼굴’로 불렸다.
김영남의 이름이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순간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당시 그는 김여정 부부장과 함께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해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면담했다. 그는 이후에도 일부 외교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2019년 91세를 끝으로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 국장으로 치러지는 ‘마지막 예우’
김영남의 장례는 북한 국가장으로 치러진다. 장의위원회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박태성 내각 총리,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현직 핵심 권력 인사들이 포함됐다. 다만 과거 대남 업무를 맡았던 김영철·리선권 등은 명단에서 빠졌다. 이는 김영남이 비록 현직에서 물러났지만, 북한 체제 내에서 여전히 ‘체제의 안정과 외교의 상징’으로 존중받고 있음을 말해준다.
김영남은 한 세기 가까운 생애 동안 북한 외교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김일성 시절의 항일 혁명 외교, 김정일 시대의 폐쇄적 자주 외교, 김정은 체제의 실용 외교로 이어지는 변화 속에서도 그는 체제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대표하는 인물로 상징된다. 그의 죽음은 북한 외교의 ‘혁명 1세대’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상징적 순간으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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