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다 사막과 노바야제믈랴에서 울리는 핵의 메아리…인류는 다시 ‘방사능의 시대’를 맞을 것인가 위기감 고조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기자] 러시아가 최근 핵실험 재개를 공식화하면서, 미국 또한 이에 맞선 대응 차원에서 핵실험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자국 국방부에 ‘핵실험 준비계획서’를 즉각 제출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는 미국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핵폭발 실험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온 직후의 일이다. 냉전 종식 이후 한동안 멈췄던 초강대국의 핵경쟁이 다시금 부활하는 셈이다. 세계는 지금, 20세기 중반의 핵실험 경쟁이 21세기형 군사 패러다임으로 되살아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1945년 최초의 핵실험이 이뤄진 뒤 2016년까지 71년간 모두 2055차례에 걸쳐 핵무기실험이 진행됐다. 핵실험 경험이 있는 국가는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 모두 8개국이다. 이 가운데 미국이 1032차례, 소련이 715차례의 핵실험을 했다. 전체 핵실험 횟수 가운데 양국의 사례가 85%를 차지한다. 이밖에 프랑스가 198차례, 영국과 중국이 각각 45차례 핵실험을 실시했다.
▌ 미국의 핵실험, 네바다 사막의 불길한 기억
미국의 핵실험은 1945년 뉴멕시코주에서 실시된 트리니티 핵실험을 제외하면, 대부분 네바다 주 사막지대의 네바다시험장에서 이루어졌다. 1951년 첫 실험 이후 1992년 핵실험 금지조약(CTBT) 체결 전까지 약 1000회 이상의 핵실험이 이 지역에서 진행됐다. 초기에는 지상과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켜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었고, 그 여파로 인근 주민들은 심각한 방사능 노출 피해를 입었다. 미국 정부는 당시 이를 은폐하거나 축소했으나, 이후 ‘다운윈더(Downwinder)’라 불린 네바다 주민들 사이에서 암과 기형 출산이 급증하면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
냉전 시절, 미국은 핵무기를 단순한 억제력이 아닌 ‘정치적 신호’로 활용했다. 소련의 핵개발이 가속화되면, 미국은 곧바로 더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실험으로 대응했다. 네바다 사막은 핵폭발의 진원지이자, 두 초강대국의 자존심 대결의 상징이었다.
현재 미국이 검토 중인 새로운 실험은 과거와 달리 ‘비폭발성’ 형태로, 실제 핵폭발은 일으키지 않지만 플루토늄의 반응 데이터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또한 사실상 핵실험 재개로 간주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핵폭발을 수반하지 않더라도 핵무기 현대화의 기술적 시험이라는 점에서, 러시아를 자극할 명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 러시아의 핵실험, 북극의 비밀 기지 ‘노바야제믈랴’
러시아(구 소련 포함)의 핵실험은 주로 북극해 인근의 노바야제믈랴(Novaya Zemlya) 제도에서 진행됐다. 이곳은 얼음과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지역으로, 방사능 확산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지였다. 소련은 이곳에서 1949년 첫 실험을 실시한 이후 약 700회 가까운 핵실험을 감행했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1961년의 ‘차르 봄바(Tsar Bomba)’ 실험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소폭탄으로, TNT 5000만 톤에 달하는 위력을 기록했다. 당시 폭발로 발생한 버섯구름은 높이 60km, 폭 40km에 달했고, 1000km 떨어진 곳의 창문이 깨졌다는 보고도 있었다. 소련은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한 압도적 군사력을 과시하려 했으나, 그 대가는 혹독했다. 인근 북극 지역의 생태계가 붕괴되고, 방사능 낙진이 유럽 북부와 아시아 일부 지역에까지 퍼졌다.
푸틴 정부는 최근 “노바야제믈랴 기지를 현대화하여 언제든 실험을 재개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고 발표했다. 이는 핵탄두의 소형화·정밀화 기술을 검증하기 위한 ‘정밀형 실험’으로 추정된다. 특히, 극초음속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소형 핵탄두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 방사능 피해와 국제사회의 우려
냉전시대 핵실험은 지구 전체를 방사능의 그늘로 덮었다. 1950~60년대 대기권 실험의 영향으로 전 세계 인류의 치아에서 스트론튬-90이 검출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국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고, 1963년 미국·소련·영국은 대기·수중·우주 핵실험을 금지하는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에 서명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실험은 1990년대 초까지 계속됐다. 핵폭발이 지하에서 일어날 경우 방사능 확산이 적다고 하지만, 지하 암반층이 무너지거나 지하수가 오염되는 등 환경 피해는 여전히 심각할 수밖에 없다. 네바다 지역의 경우, 지금도 일부 지하수에서 방사능 잔류물이 검출되고 있으며, 노바야제믈랴 역시 해양 오염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현대의 핵실험은 대부분 ‘데이터 검증’ 목적의 비폭발성 실험 형태지만, 실제 핵탄두 실험으로 전환될 위험은 배제키 어렵다. 미국과 러시아가 동시에 핵실험 재개를 공식화한다면, 중국과 북한, 인도, 파키스탄 등도 잇달아 대응 실험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신(新)핵군비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 냉전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까
핵실험은 단순한 군사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메시지’다. 푸틴의 지시는 러시아의 안보 불안을 내세운 압박이자,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 서방에 대한 경고다. 반면 미국의 실험 추진 논의는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하려는 군사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 경쟁이 실제 폭발 실험으로 이어질 경우, 인류는 다시금 ‘핵의 공포’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냉전기를 겪은 인류가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핵실험의 승자는 없었다. 방사능은 국경을 구분하지 않았고, 초강대국의 경쟁은 인류 전체의 위험으로 귀결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경쟁이 아니라 ‘핵실험 없는 억제력’을 유지할 국제적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흐르고 있다. 네바다와 노바야제믈랴, 두 사막과 빙하는 다시 핵의 불길한 진동으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 [Why] 중국은 왜 韓日등 45개국 30일 무비자 정책을 일방적으로 연장했나
- [Why] 대통령·총리·영부인까지 나서 한화오션 잠수함 수주 지원에 나선 이유
- [Why] 李대통령, 트럼프에게 “핵잠수함 연료 공급” 요청한 이유
- [Why] 트럼프의 집요한 러브콜에도…北, 러시아와 ‘밀착’ 택한 이유
- [Why]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위력 떨친 드론, 하지만 악천후에는 포병이 필요한 이유
- [Why] 지금 미국여행가면 안되는 이유, 연방정부 셧다운 여파로 항공대란
- [Why] ‘코브라, 바이퍼, 게이터…’ 미군은 왜 무기·부대상징에 파충류를 선호할까
- [Why] 최첨단 스텔스 F-35 사우디 판매, 중동 군사지형 요동치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