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전파전·자율항법이 결합된 ‘하늘의 신냉전’…덴마크, 유럽 안티드론 기술 혁신의 중심으로 급부상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덴마크 북부의 항구 도시 오르보르. 겉보기엔 평범한 산업 창고지만, 내부에서는 유럽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조립되고 있다. 근로자들이 정교하게 손을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안티드론’ 장비다. 한때 틈새시장으로 여겨졌던 이 산업이, 러시아의 빈번한 드론 침공으로 인해 이제는 유럽의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움직이는 전략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 전쟁이 만든 신산업, ‘안티드론’ 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은 유럽 산업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드론이 전쟁의 주요 무기로 부상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안티드론 기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5년 현재, 유럽 각국은 국경과 공항, 원전, 군기지에 드론 탐지 및 차단 장비를 속속 배치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9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영공 침입 사건을 계기로 ‘드론 방벽(드론 월)’ 구축에 합의했다.
이 같은 안보 위기가 새로운 산업 기회를 만든 것이다. 안티드론 장비는 더 이상 군사장비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간 공항, 발전소, 석유시설 등에서도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 덴마크의 스타 기업들, ‘윙맨’과 ‘바이벨’
이 산업의 중심에는 덴마크가 있다. 대표 주자는 마이디펜스와 바이벨 사이언티픽이다.
마이디펜스는 병사가 휴대하는 전파 교란 장비 ‘윙맨(Wingman)’으로 주목받고 있다.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에 2000대 이상을 납품했으며, 매출은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한 1870만 달러를 기록했다.
마이디펜스 단 헤르만센 CEO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회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며 “이제는 군뿐 아니라 공항, 발전소, 항만 등에서도 드론 방어 장비가 표준처럼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역인 바이벨 사이언티픽은 1970년대부터 레이더 기술을 연구해온 기업이다. 최근엔 도플러 레이더를 드론 탐지용으로 전환해, 코펜하겐공항을 비롯한 유럽 주요 공항의 드론 대응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회사 피터 뢰프케 CEO는 “드론의 이동 궤적을 실시간 추적해 공항 마비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며 “유럽 전역에서 수요가 폭증 중”이라고 전했다.
▌ ‘안보기술’에서 ‘수출산업’으로
덴마크 정부는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안티드론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방산기업과 스타트업의 협력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2024년 기준, 덴마크의 관련 산업 수출액은 전년 대비 62% 증가했다.
특히 AI 기반 탐지·자율항법 시스템을 탑재한 다중 스펙트럼 장거리 광학 감시장치인 ‘메롭스(Merops)’와 같은 첨단 장비가 나토의 핵심 방어망으로 채택되면서, 덴마크는 유럽 안보기술 수출의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메롭스’는 드론의 주파수 신호와 비행 패턴을 실시간으로 학습해 위협을 식별하고, 통신이 교란된 환경에서도 자율적으로 비행 경로를 계산해 대응하는 AI 전자전 플랫폼이다. 이 시스템은 기존의 수동식 전파 방어체계를 자동화·지능화함으로써, 나토의 ‘AI 기반 하늘 방패(AI Air Shield)’ 전략의 핵심 장비로 평가받고 있다.
▌ “유럽의 실리콘밸리, 이제는 ‘스카이 밸리’로”
전문가들은 덴마크의 사례를 ‘하이브리드 산업 성공 모델’로 평가한다. 안드레아스 그라에 덴마크 왕립국방대 교수는 “전쟁이 기술 혁신을 자극한 전형적인 예”라며 “유럽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안보 수요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스카이 밸리’가 형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낳은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덴마크는 그 위기를 산업혁신의 기회로 바꿔냈다. 이제 유럽의 하늘은 단순한 전쟁터가 아니라, 첨단 기술과 경제가 경쟁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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