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에서 SNS까지, 전쟁의 무기는 이제 ‘정보와 감정’
가짜뉴스와 진정성의 대결…심리전이 바꾼 전장의 규칙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전쟁은 총과 포탄만으로 치러지지 않는다. 군사전략에서 종종 간과되지만, 적의 사기와 민심을 흔드는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 은 오래전부터 장기전의 핵심 전략으로 작동해왔다. 냉전기의 확성기 방송에서 21세기 소셜미디어 선전전에 이르기까지, 심리전은 기술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남북한, 휴전선 너머의 ‘확성기 전쟁’=1950년대 이후 남북한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심리전을 이어왔다. 남한은 확성기를 통해 북한 체제의 모순을 비판하고 한류 음악을 틀어 북한군의 심리적 동요를 유도했다. 북한은 맞대응 방송과 전단 살포로 응수했다.
미국 CSIS는 이를 “냉전 심리전의 살아있는 전형”으로 평가했으며, 실제로 2016년 재개된 확성기 방송은 북한 내부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어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SNS가 무기가 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심리전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었다. 러시아는 가짜뉴스, 조작 영상, 해킹을 통해 내부 혼란을 조성했다. 우크라이나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와 트위터, 틱톡 등을 활용해 국민 사기를 높이고 국제 여론을 결집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이를 “트위터에서 실시간 전개된 최초의 정보전”으로 분석했으며, 뉴욕타임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매일 밤 연설을 “전 세계를 향한 심리전”으로 규정했다. 이는 정보의 신뢰성과 타이밍이 현대 심리전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국과 나토의 체계적 심리작전=미국은 일찍이 심리작전그룹(PSYOP) 을 창설해 전단 살포, 라디오 방송, 지역 공작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1년 걸프전이다. 미군은 당시 라디오 방송과 전단으로 이라크군의 대규모 투항을 유도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다. 당시 미군은 ‘백기 투항 방법’을 담은 전단 살포로 전투 전 수많은 병사가 항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은 문자메시지와 방송을 통해 탈레반의 영향력 약화를 시도했다.
나토 역시 2000년대 이후 심리전 전담 부대를 운영하며 동유럽과 중동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병력 투입 전 정보환경을 장악하는 도구”라고 정의한다.
◇심리전의 윤리적 논란=심리전의 위력이 커질수록 윤리적 경계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허위정보 조작은 국제법상 전쟁범죄로 해석될 수 있다. 가짜뉴스와 정당한 선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 국제 규범 정립이 시급하다.
독일 마르부르크대 노이만 교수는 “심리전은 전통적 무력 충돌을 넘어선 새로운 전쟁 방식”이라며 “국제 규제 체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리전은 소리 없는 무기다. 확성기에서 SNS로, 전단에서 알고리즘으로 진화한 심리전은 앞으로도 각국의 군사 전략 속 중심축으로 자리할 것이다. 총성이 울리지 않아도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자가 결국 전장을 제압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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