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풍경은 사라졌지만 마음속 추억은 여전히 남아…비디오 대여점, 다방, 문방구가 들려주는 세대의 이야기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세월은 언제나 조용히 흐르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일상 풍경은 빠르게 바뀐다. 한때 너무도 익숙했던 공간과 사물들이 이제는 추억 속에만 남아 있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 공중전화, 종이 버스표, 다방, 동네 문방구는 단순한 생활 도구나 상업 공간이 아니라 시대의 정서와 문화를 담아냈던 상징물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거나 희귀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들의 흔적을 되짚는 일은 곧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 골목마다 빛나던 비디오 대여점
1990년대 주말 저녁,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대여점에서 테이프를 고르던 풍경은 일상이었다. VHS에서 DVD로 이어진 비디오 대여점은 동네 사람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했다. 어린이 만화영화 코너에서 발길을 떼지 못하던 아이들, 첫 데이트에 함께 영화를 고르던 연인들, 신작을 빨리 빌리려 경쟁하던 풍경까지 모두 한 장의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나 인터넷 다운로드, IPTV, OTT(넷플릭스·웨이브 등)의 등장으로 대여점은 빠르게 사라졌다. 이제 간판만이 옛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 공중전화, 긴급 상황의 구세주였던 존재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공중전화는 사회적 필수 인프라였다. 동전이나 통화카드만 있으면 어디서든 연락할 수 있었고, 집으로 귀가 전화를 걸던 학생들, 사랑 고백을 준비하던 청춘들이 부스 안에 서 있었다. 지금은 전국에 2만 대도 남지 않았으며, 유지 비용 때문에 점차 철거되고 있다. 그러나 재난 상황 대비 차원에서 일부 유지되는 만큼, 공중전화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안전망으로서 여전히 역할을 한다.
◇ 종이 버스표, 이동의 증명에서 수집품으로
버스 요금을 내면 작은 종이표가 손에 쥐어졌다. 구멍이 뚫린 표를 모아 앨범에 붙이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이제 교통카드 시대에선 찾아볼 수 없다. 자석식 카드와 티머니·캐시비 같은 전자 교통카드가 전국을 연결하면서 종이 버스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물리적 표는 사라졌지만, 대신 단일 카드로 전국을 오가는 편리함을 얻게 된 셈이다.
◇ 다방, 커피 향에 담긴 세대의 문화
지금의 카페 문화가 있기 전, 한국의 도심 곳곳에는 ‘다방’이 있었다. 은은한 음악이 흐르고, 커피 한 잔에 신문을 넘기며 시간을 보내던 곳. 비즈니스 미팅, 소개팅, 동호회 모임이 다방에서 이뤄졌다. 여종업원이 ‘다방 커피’를 배달하던 풍경도 익숙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카페의 확산과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다방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간혹 지방 소도시에서 옛 간판을 찾아볼 수 있지만, 다방은 이제 ‘카페 이전 세대의 사교 공간’으로만 회상된다.
◇ 동네 문방구,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배움터
문방구는 단순히 학용품을 파는 가게가 아니었다. 오락기 몇 대가 놓여 있던 공간은 학생들의 놀이터였고, 불량식품이라 불리던 과자와 장난감은 아이들 세상의 보물이 됐다. 시험 전날 급히 지우개와 볼펜을 사러 달려가던 기억, 동전 몇 개로 친구들과 오락기에 몰두하던 장면은 세대를 막론하고 공유되는 추억이다. 그러나 대형 문구점과 온라인 쇼핑몰의 확산, 주거 환경 변화로 문방구는 점차 사라졌다. 지금은 몇몇 골목에서만 그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
◇ 사라짐이 주는 아쉬움과 새로운 문화
비디오 대여점, 공중전화, 종이 버스표, 다방, 문방구는 불편하고 낡아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밀려난 것이다. 대신 OTT 플랫폼, 스마트폰, 교통카드, 프랜차이즈 카페, 온라인 문구 쇼핑이 자리를 채웠다. 더 편리하고 효율적이지만, 그 속에는 공동체적 풍경과 아날로그 감성이 빠져 있다.
사라진 풍경은 단순한 향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들은 한국인의 생활 방식과 정서를 담아낸 문화적 기억이다. 오늘의 편리한 일상도 언젠가는 또 다른 세대에게 “사라진 것들”로 회상될 것이다. 따라서 잊히는 풍경을 기록하는 것은 곧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고, 세대 간 공감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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