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문화가 반영된 ‘우리 집 가족 이름’의 세대교체, 한미 동조현상
[뉴스임팩트=박시연 기자] 반려동물 1500만 시대. 이제 강아지와 고양이는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진짜 ‘가족’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가족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이름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최근 반려동물 이름에도 ‘트렌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 이름처럼 시대의 감성과 사회문화적 흐름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 ‘뽀삐’, ‘콩이’에서 ‘루나’, ‘코코’로
10년 전만 해도 반려견 이름 순위는 ‘뽀삐’, ‘콩이’, ‘보리’, ‘초코’ 등이 대부분이었다. 귀엽고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 대세였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반려동물 플랫폼 ‘펫프렌즈’와 펫보험사 DB손해보험 조사에 따르면, 2024년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려견 이름은 ‘루나’, ‘코코’, ‘벨라’, ‘모카’, ‘해피’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루나’는 라틴어로 ‘달’을 뜻하며 신비롭고 감성적인 이미지를 준다. ‘코코’는 패션 아이콘 코코 샤넬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세련되고 글로벌한 감각을 담고 있다. ‘벨라’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을 의미한다. 과거의 ‘귀여움 코드’ 대신 ‘스타일’과 ‘감성’을 중시하는 세대로 변한 셈이다.
▌ 고양이 이름도 세대교체 중
고양이의 경우 변화가 더욱 극적이다. 한때 ‘나비’, ‘모모’가 고양이 이름의 대명사였지만, 요즘은 ‘레오’, ‘노아’, ‘루비’, ‘미로’ 등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특히 ‘레오’는 영화 타이타닉의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영향, ‘노아’는 성경과 영화 속 캐릭터에서 비롯된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술가 미로(Joan Miró)의 이름을 딴 ‘미로’는 고양이의 자유로운 성격을 상징한다. SNS에서 ‘#레오냥’, ‘#노아집사’ 해시태그가 넘쳐나는 이유다.
▌ 미국에서도 ‘루나’와 ‘벨라’가 대세
이 같은 흐름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반려동물 이름의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미국 최대 반려동물 데이터 플랫폼 ‘로버닷컴’이 발표한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려견 이름 1위는 역시 ‘루나(Luna)’였다. 이어 ‘벨라(Bella)’, ‘데이지(Daisy)’, ‘루시(Lucy)’, ‘맥스(Max)’가 뒤를 이었다.
특히 ‘루나’는 미국에서 고양이 이름 1위이기도 하다. 이는 달과 우주, 자연에 대한 감성적 선호가 확산된 결과로 분석된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에서도 사람 이름이 반려동물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리버(Oliver)’, ‘소피(Sophie)’, ‘미아(Mia)’ 같은 이름이 강아지나 고양이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는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대하는 ‘펫 휴머니제이션(Pet Humanization)’ 현상을 보여준다.
▌ 사람 이름화·브랜드화되는 반려동물 이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리’, ‘윤호’, ‘지우’, ‘소라’ 등은 이제 반려동물 이름으로 낯설지 않다. IT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픽셀(Pixel)’, ‘시리(Siri)’ 같은 이름이, 패션업계에서는 ‘샤넬(Chanel)’, ‘구찌(Gucci)’, ‘디올(Dior)’ 등이 인기를 끈다.
한 문화심리학자는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주인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분석한다. 결국 반려동물의 이름은 주인의 취향과 세대 문화를 반영한 ‘작은 문화 코드’인 셈이다.
▌ ‘루나 세대’의 탄생
과거의 ‘뽀삐 세대’가 순박함과 정겨움을 상징했다면, 오늘날의 ‘루나 세대’는 감성, 세련됨, 글로벌 감각을 추구한다. 이름의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시대의 정서를 비추는 거울이다.
심리학자 카렌 루이스 박사는 “루나나 코코 같은 이름은 단순히 귀여운 발음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반려동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자기 이미지의 연장선상”이라며 “이제 이름은 반려동물의 것이 아니라, 주인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반려동물 이름에도 세대가 있다. 만약 지금 당신의 반려견 이름이 ‘루나’라면, 당신은 이미 ‘2020년대형 감성 가족’의 일원이다. 이름 하나로 시대를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작은 문화사(文化史)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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