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룰라 80세 되는 내년 4선 도전, 트럼프·시진핑·푸틴 등 ‘고령 리더십’ 시대가 왔다
[뉴스임팩트=최준영 대기자]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 중 한 명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0년 취임 후 살인적인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시키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에 힘입어 그는 재선에 도전했는데, 당시 유세과정에서 고령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렀지만 결국 성공했다. 재선 도전 당시의 그의 나이는 73세였다.
2025년 현재,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79)이 2026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내년이면 80이 되지만 30대의 열정이 여전하다”는 그의 발언은 단순한 의지 표명이 아니라, ‘고령 지도자 시대’의 상징적 선언으로 읽힌다.
룰라는 이미 세 차례 대통령을 지냈고, 헌법상 연속 3선은 금지돼 있지만 비연속 재출마가 가능하다. 그는 경제 회복과 사회 복지 확대를 내세우며 “국민이 원한다면 언제든 다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세계 주요국 정상 중 상당수가 70세 이상이라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79세다. 1946년생인 그는 78세의 나이로 당선돼 전임 조 바이든의 최고령 당선(77세) 기록을 경신했다. 내년이면 80세가 되고, 임기를 마칠 때면 83세가 된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해 72세이고, 중국 4중전회에서 사실상 2035년까지 집권할 것임을 예고했다. 2035년에 그는 82세가 된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73)은 지난해 대통령에 당선돼 2030년까지 집권한다. 그는 또 다시 연임에 성공한다면 2036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 2030년에 그의 나이는 78세이고, 2036년이면 84세가 된다.
트럼프와 시진핑, 푸틴은 모두 고령에도 불구하고 국가 최고 권력의 중심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 과거엔 ‘고령 리스크’, 이제는 ‘관록 프리미엄’
1980년대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73세의 나이로 재선에 도전했을 때, 언론과 야당은 그의 ‘고령’을 주요 쟁점으로 삼았다. 당시 TV 토론에서 레이건은 고령을 걱정하는 패널의 질문에 “상대 후보의 젊음과 경험 부족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재치 있게 받아쳐 웃음을 자아냈지만, 여론은 여전히 ‘나이 문제’에 민감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정치 지도자의 연령은 더 이상 절대적 약점이 아니다. 국제 정치가 복잡해지고, 경제·안보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경험의 가치’가 재평가되고 있다. 20~30년 넘게 정치와 외교를 경험한 지도자들의 노련함이 ‘위기관리 능력’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룰라 역시 과거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브라질의 민주화와 성장기를 이끈 상징적 인물이다. 그가 재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젊은 정치세력이 충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현실도 작용했다.
▌ ‘7080 리더십’이 부상한 세 가지 이유
첫째, 경험과 안정감의 가치 상승이다. 지정학적 불안, 경제 위기, 기술 패권 경쟁 등 복합위기 시대에는 실험보다는 ‘안정’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국민들은 과감한 개혁보다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리더”를 찾는다. 트럼프, 시진핑, 푸틴, 룰라 모두 ‘위기 관리형 리더’로 이미 한 차례씩 검증된 경험이 있다.
둘째, 세대교체 지연과 정치의 장기화다.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지연되는 것도 이유다. 젊은 세대가 정치에 진입하기 어렵고, 기존 엘리트 정치인들이 권력을 장기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령화가 진행됐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처럼 장기 집권 체제가 굳어진 국가에서는 ‘고령=권위’로 해석되기도 한다.
셋째, 신체·정신적 활력의 연장이다. 의학과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 관리가 체계화되면서, 70~80대도 과거보다 훨씬 활동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하루 수시간씩 연설과 순방을 소화하며, 시진핑 주석 역시 연중 수차례 해외 순방을 이어간다. 푸틴 대통령은 지금도 유도와 각종 격투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이 더 이상 ‘은퇴’의 상징이 아닌 시대가 된 셈이다.
▌ 그러나 여전한 ‘나이의 그늘’
고령 지도자들의 활약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한편,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건강과 판단력 리스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억력 논란,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의 인지력 문제, 푸틴의 건강 이상설, 룰라의 뇌출혈 수술 등은 모두 고령 리더십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례다.
또한 세대교체의 지연은 정치적 혁신을 늦추는 요인이 된다. 기후위기·AI 거버넌스·젠더 이슈 등 새로운 세대의 정책 의제를 기존 지도자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경험은 자산이지만, 낡은 세계관은 리스크”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 레이건 시대와의 격차, 그리고 지금의 의미
1984년, 레이건의 고령 논란은 정치적 풍자와 언론의 주요 소재였다. 하지만 2025년의 세계는 오히려 ‘나이의 관록’을 리더십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다. 젊은 정치인이 ‘변화’의 상징이었다면, 오늘날 고령 지도자는 ‘예측 가능성’과 ‘안정’의 아이콘이 된 셈이다.
룰라의 4선 도전, 트럼프의 재집권, 시진핑의 장기 집권, 푸틴의 개헌 연임은 모두 “리더십의 생애주기”가 길어졌음을 보여준다. 정치가 더 이상 젊음의 전유물이 아니며, 고령의 정치인들이 디지털 소통과 국제 외교에서 젊은 세대 못지않은 기동성을 보이는 것도 달라진 풍경이다.
▌ ‘숫자’보다 중요한 건 ‘시대 적응력’
결국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느냐다. 경험과 연륜이 위기 대응의 자산이 될 수도 있지만, 변화에 둔감해진다면 그것은 한계로 작용한다.
고령 지도자들이 다시 세계 정치의 중심에 선 지금, 우리는 묻게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아니면 시대를 버티는 또 하나의 능력인가.’
그 답은 룰라, 트럼프, 시진핑, 푸틴이 앞으로 어떻게 ‘노(老)정치의 미래’를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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